박정하 일상과 생각 / 단테의 《신곡》을 다시 펼치며
- 박정하 일상과생각 / 박정하 칼럼니스트 / 2026-10-18 00:05:41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단테의 《신곡》은 이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묵직한 두께와 고전이 주는 중압감에 주춤했다. 과연 내가 이 거대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뜻밖의 이야기를 만났다. 그것은 난해한 신학이나 철학이 아니라, 길을 잃은 한 인간이 어둠을 지나 다시 삶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우리네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1265년에 태어난 단테는 인생의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서른다섯 무렵을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나의 인생길’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길’이라고 썼다는 사실이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 누구나 어느 순간 길을 잃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젊은 날에는 앞만 바라보고 달린다. 학업과 직장, 가정과 자녀,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감당하느라 정신없이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과연 제대로 살아왔는가. 내가 원했던 삶이 이것이었을까. 남은 시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쩌면 그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이 우리가 마주하는 ‘어두운 숲’인지도 모른다.
단테는 숲에서 길을 잃고 표범과 사자, 암늑대에게 가로막힌다. 특히 끝없는 탐욕을 상징하는 암늑대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의 길을 막아서는지를 보여준다. 그때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를 안내한다. 두 사람은 함께 지옥과 연옥을 지나간다.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를 생각한다. 길을 잃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어 삶의 이정표를 놓칠 수도 있다. 지나친 욕심에 실족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번도 길을 잃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다시 길을 찾아 나서는 용기다.
다시 자신의 길을 찾기에 결코 늦은 때란 없다.
단테가 처음 마주하는 지옥은 탐욕과 분노, 배신과 폭력이 빚어낸 고통의 세계다. 나는 그곳을 단순히 사후의 형벌이 이루어지는 장소로만 볼 수 없었다. 인간은 살아서도 얼마든지 자기 마음속에 지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욕심과 시기, 분노와 용서하지 못한 응어리가 마음을 지배하면 아무리 풍요롭게 살아도 평안을 누리기 어렵다. 그러니 가끔은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무엇 때문에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가. 이미 지나간 일에 매달리거나 내려놓을 수 있는 짐을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

“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러나 살아 있는 우리에게는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당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도 내일 아침을 기다릴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지옥을 지나면 연옥이 기다린다. 연옥은 잘못을 깨닫고 자신을 정화하며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든 나에게 연옥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돌아보면 누구나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참았더라면,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더라면, 조금 더 사랑하고 덜 미워했더라면 좋았을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지나간 일을 돌아보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는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부를 쌓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달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질문도 달라진다. 무엇을 더 채울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미움과 욕심을 내려놓고,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고, 자녀의 삶을 내 뜻대로 이끌려 했던 마음마저 조금씩 거둔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어쩌면 인생 후반부의 지혜란 더 많이 소유하는 기술이 아니라,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 알고 덜 중요한 것들을 내려놓는 태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단테의 여정은 연옥에서 끝나지 않는다. 베르길리우스가 이성의 안내자라면, 천국에서 단테를 이끄는 베아트리체는 사랑과 신앙, 신성한 은총을 상징한다. 젊은 시절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던 사랑은 시인의 상상 속에서 영혼을 구원으로 이끄는 사랑으로 승화된 듯하다.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신곡》은 한 문장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L'amor che move il sole e l'altre stelle. “해와 별들을 움직이시는 사랑.”
참으로 놀라운 결말이다. 지옥의 어둠에서 시작된 긴 여정이 우주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 사랑에 이르러 끝난다. 단테가 발견한 궁극의 질서는 권력이나 부, 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 역시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성공과 명예가 중요한 줄 알았다. 하지만 긴 세월을 살아온 지금, 마음에 온기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 가족과 나눈 정겨운 시간, 벗들과 터뜨린 웃음, 어려울 때 내밀어 준 손길, 그리고 내가 건넨 작은 친절이 아니겠는가. 인생에서 끝내 남는 것은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느냐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어두운 숲을 지난다. 길을 잃고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할 수도 있으며, 미처 건네지 못한 안부를 지금이라도 전할 수 있다. 새로운 책을 펼치고 배움에 마음을 여는 일도 가능하다. 인생의 전반부가 이루고 싶은 것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면, 후반부는 무엇을 남기며 살아갈 것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아닐까. 재산이나 명예보다 가족에게는 함께한 좋은 시간을, 벗들에게는 따뜻한 기억을,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친절 하나를 남기는 일 말이다.

단테가 일생의 긴 여정 끝에 발견한 사랑은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아끼고, 먼저 마음을 건네고,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일.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 삶의 마지막 장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것이다. 우리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길에서는 탐욕을 덜고, 용서와 사랑을 더하며 걸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단테<신곡>의 마지막에 새겨 놓은 그 한 문장을 조용히 마음에 담아 본다.
“해와 별들을 움직이시는 사랑.”
지옥의 어둠에서 출발한 긴 여정은 마침내 사랑에 이르러 끝난다. 그 사랑은 단테의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진실로 다가온다. 우리의 긴 인생길도 결국 사랑과 깊은 감사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결말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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