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일상과 생각 / 난생처음 우리말을 낯설게 들은 날
- 박정하 일상과생각 / 박정하 칼럼니스트 / 2026-10-09 08: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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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음악협회 건물 전경(Wiener Musikverein)> |
1980년대 중반이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빈에서 당대 최고의 바그너 가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베이스 바리톤 한스 호터(Hans Hotter, 1909~2003) 교수의 독일 가곡(Lied)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했다. 어느 날 공개 레슨에서 나는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가운데 첫 곡인 ‘Im wunderschönen Monat Mai(참 아름다운 오월에)’를 들고 그 대가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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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마음으로 노래를 하고 레슨이 시작되면서 호터 교수가 뜻밖의 주문을 했다.
“그 시를 한국어로 한번 낭송해 보세요.”
나는 순간 당황했다. 독일어로 노래하는 것은 익숙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한국어로 시를 읊으라니. 그러나 다행히 당시 나는 그 노래의 가사인 하이네의 시를 독일어뿐 아니라 우리말로도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었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시적 운율을 최대한 살리며 천천히 우리말로 읊어 나갔다.
“참 아름다운 오월에,
모든 꽃봉오리 피어날 때,
내 마음속에서도 사랑이 싹텄습니다.
참 아름다운 오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 그녀에게 고백했다오,
내 그리움과 열망을.”
나는 시의 정서를 살리려고 애쓰며 읊었다. 수강생들은 난생처음 듣는 동양의 언어가 신기한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낭송이 끝나자 호터 교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박수를 쳤다. 곧이어 수강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의외의 반응에 다소 당황해하는 내게 호터 교수는 자신이 알고 있던 일본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면서, 한국어가 무척 리드미컬하고 시적으로 들린다고 했다. 참으로 아름답다는 칭찬이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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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 Hans Hotter, 1909~2003) |
그로부터 어느덧 40년이 흘렀다. 하지만 한글날이 다가오면 여전히 그날의 기억이 또렷이 떠올라 혼자 미소 짓곤 한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우리말을 낯설게 들었던 것 같다. 평생 듣고 사용해온 말이었다. 너무 익숙해서 아름답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말이다. 그런데 낯선 땅 빈에서, 독일어와 음악의 세계에서 평생 살아온 한 위대한 음악가의 귀를 통해 우리말의 울림을 듣고 나니,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사용했던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말 속에 음악이 있었던 것이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고, 음절과 음절이 이어지고, 문장이 흘러가는 그 리듬 속에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름다운 가락이 숨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우리말을 의미나 내용이 아니라 순수한 소리로 들었던 날인지도 모른다.
그날 호터 교수가 아름답다고 말한 것은 한국어의 소리였다. 하지만 그 소리를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정갈하게 붙잡아주는 것은 한글이다. 말은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만 글은 남는다. 그리고 글이 남아 있기에 우리는 먼 옛날 누군가가 나직하게 건넨 목소리까지 오늘 다시 들을 수 있다.
오래전 안동을 여행하며 만났던 ‘원이 아버지에게’라는 편지가 그랬다. 1586년,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응태의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 임신한 아내가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써서 무덤 속에 넣어둔 글이다.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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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태 묘 출토 편지> |
1446년 훈민정음이 세상에 반포된 지 올해로 580년, 그 긴 세월 동안 한글은 우리의 말과 마음을 정직하게 담아왔다. 누군가는 사랑을 썼고, 누군가는 억울함을 호소했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고단했던 하루를 기록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도 한글이라는 그릇을 통해 아름다운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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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 국가 표준영정|김기창, 1973> |
40년 전 빈에서 한 위대한 음악가가 내게 보내준 박수를 다시 떠올려본다. 그때는 그저 칭찬받았다는 생각에 안도했을 뿐이었지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날 호터 교수가 쳐준 박수는 한 젊은 성악도의 서툰 한국어 낭송이 아니라, 내가 평생 너무 익숙해서 알아보지 못했던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향한 박수였고, 그 아름다운 소리를 오늘까지 담아온 한글을 향한 따뜻한 헌사였음을. 10월이 오면 나는 그날의 빈을 떠올린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조용히 읊조려본다.
‘나는 참 아름다운 말을 쓰며, 참 고운 글을 누리며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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