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usal Relationship / 조명동 (전)경향신문 사진부장의 '만남'

Interview / 김석구 / 2021-12-16 04:47:17
- 뉴욕에서 만났던 선배들과의 즐거웠던 시간들!

[스마트시니어뉴스=조명동 칼럼니스트] 나의 아들 가족은 직장 연수 프로그램으로 1년 7개월을 뉴욕에 체류하게 되었다. 집사람과 나는 2011년, 12년 두 번에 걸쳐 80일간 뉴욕을 갔고, 2013년 가을에는 혼자 18일간 뉴욕 촬영여행을 했다. 사진하는 나로써 베이스캠프가 있어 행운이었고, 그리웠던 선배님을 만난 것 또한 큰 기쁨이었다. 그날 만남의 추억을 회상하며 지면으로나 잠시 그분들을 기억하는 회원들에게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을 전해본다.

 

김정찬(중앙일보. 73년 이민), 전용종(조선, 80년 이민), 김천길(AP. 87년 이민). 세 분의 선배를 뉴욕에서 만났다. 뉴욕 떠나기 전부터 전용종 선배와는 메일로 소식을 전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용종 선배는 맨해튼에서 김정찬 선배와 가끔씩 서로의 만남이 있으셨으며 나의 뉴욕 도착으로 세 명이 함께 만나기를 여러 번,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었다. 매번 거나한 김정찬 선배의 점심 대접으로 만남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누구도 점심 대접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나 허락을 안 하셨다.

 

김정찬 선배는 1970년 12월 국내에서 제일 큰 인명 피해(사망자 326명,작년 세월호 해난 사고 때 인명피해 304명)를 낸 남영호 해난 사고 때 항공사진으로 특종을 하셨던 분이다. 중앙일보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선장의 모습을 김정찬 선배의 카메라에 담은 특종사진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계제하여 타 신문사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김정찬 선배는 그 사진으로 제 8회 한국보도사진전에 금상을 수상하셨다. 그 때 나는 밀감상자가 둥둥 떠다니는 사진들을 보고 있던 경향신문 1년 차 사진기자였던 내겐 김정찬 선배는 선망의 대상이셨다. 이후 김정찬 선배는 73년도에 LA로 이민을 가셔서 두 내외분이 프리마켓을 운영하시다가 78년 뉴욕으로 이주하셨다. 여성의류사업을 15년간 열심히 하셨고, 한국에서 선·후배, 동료가 뉴욕에 오면 형제 대하듯 친절히 맞이해 주셨던 분이시다. 2000년부터는 교회 장로일도 보시고, 일주일에 3일은 등산을 하시는 등 아직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활발하게 생활하시고, 어려운 이웃에 대해선 남 모르게 도움을 주시는 조그만 사회복지운동도 하고 계신다.

조선일보 65년 견습 기자 출신이신 전용종 선배는 80년도 미국으로 이민가신 선배로, 81년 미주동아일보 기자, 84년~90년 조선일보 미주판 기자를 거쳐 편집국장을 역임하셨던 분이다. 65클럽(65년도에 입사한 사진기자) 멤버로 공길남, 김동준, 김병주, 김성배, 서일성, 송영학, 신종옥, 조천용, 김홍기(작고), 민영식(작고) 등 당시 멤버들을 항상 기억하신다. 현재는 미주 이민자와 소수민족으로 한 시대를 살아온 한인들 기록 사진을 촬영 중이시다. 특히 나의 뉴욕 촬영에 큰 도움을 주셨던 분이다.

 

4.19, 5.16 등 숨 가쁘게 이어져 온 격동의 현장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세계에 알리셨던 AP 김천길 선배는 당시 많은 사진기자들이 좋아했던 선배였다. 워싱턴에 계신 줄 알 고 2012년 80일간 뉴욕에 머물 때는 뵙지 못했는데 2013년 가을 연락이 닿아 뉴욕에서 만나 뵐 수 있었다. 현재 귀가 잘 안 들려 사모님이 꼭 함께 다니신다. 우리 집도 봐야 한다며 스탠아일랜드 가는 페리를 함께 타고 자신의 거쳐까지 동행하시면 초대해주시던 정이 많은 분으로 작년에 퀸즈 쪽으로 이사를 나오셨다고 한다. 

 

87년 AP통신사를 정년퇴직 후, 20년 이상 거래하던 국민은행에 들러 AP를 그만두었는데 신용카드를 계속 쓸 수 있느냐고 담당 직원에게 물었더니 담당자가 카드를 보자고 하고는 그 자리에서 카드를 꺾어 버렸다는 가슴 아픈 추억도 간직하고 계신분이다. 그해 미국으로 이민 가셨다. 특히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뉴욕에 있는 AP통신 본사에서는 일본 동경지사 사진부장 등 3명(일본인)을 한국에 급파했다. 당시 나도 광주에 있었고 국내 기자들은 숨어서 취재를 했는데 외신기자들은 지프 차에 외신 깃발을 날리며 활발한 취재를 했다. 

 

하루는 AP 사진기자가 안 보였다. 서울에서 광주로 급파된 AP 일본 기자가 기관총 사격을 받고 민가로 피신, 취재를 못하는 바람에 AP통신은 타 통신사에 48시간을 졌다고 한다. 10일간 취재 후 교대 후, 다음날 서울 AP 사무실에 들렀더니 김천길 선배와 동경지사에서 온 일본인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기운들이 없었다. 그날 저녁 AP 식구들을 우리집으로 초청했다. 경향신문 주홍행 부장께 분위기 잘 띄우시는 장인배 선배(부산일보)의 동석을 부탁해서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마련하는 자리가 되었다. 살아있는 듯 입이 움직이는 싱싱한 광어회로 차려낸 상차림을 보고 일본인들은 너무 좋아했고 그렇게 나는 항상 존경하던 김천길 선배께 감사함을 전했던 기억이 난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늘 정겨운 마음으로 만나는 선배들이 계셔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사진기자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던 이번 만남이 내 삶에도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다시 뉴욕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날이 기다리며, 우리 퇴직한 (사)한국보도사진가협회 회원들도 각자의 선·후배, 동료와의 좋은 추억과 인연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함께 이어가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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