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king / 첫눈 맞으며 걸어본 낙산 성곽길

News / 조용수 기자 / 2021-12-03 04:55:33

 

[스마트시니어뉴스=조용수 기자] 맑았던 아침이 시간이 지나자 뿌연 잿빛으로 바뀌더니 하늘에서 슬금슬금 차가운 결정체가 이마를 스친다. 첫눈이다. 첫눈이 내린다기보다 그저 잠시 인사만 하는 듯, 날리다 바람 속으로 그 자취를 숨긴다. 2015년 11월 26일 오전 열시. (사)한국보도사진가협회 겨울 낙산 성곽길 트래킹이 있던 날 아침 우리는 그렇게 첫눈과 인사를 나눴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첫눈이 내리는 도시의 풍경은 온통 잿빛이다. 간혹 먹구름 사이로 햇빛이 용트림하며 구름옷을 벗어 버리다 금방 포기한다. 조용한 성곽 길은 그저 적막감과 쓸쓸함으로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무 말 없이 다가온다. 첫눈이라는 설렘과 순수함은 각박한 도시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슴 뛰는 감동과 희망을 줄 것 같은 기대감만 키워 놓은 채....

혜화역 4번 출구를 나와 삼삼오오 모였던 회원들의 저마다의 안부를 뒤로 하고, 낙산 성곽 길로 오르는 첫 계단은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는 묘한 여운을 안겨준다. 간간히 날리는 첫눈 아닌 첫눈 또한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도심의 성곽 길인데 마치 높은 산 정상에서 아래를 바라보다 만난 듯 한 착각에 다시 한 번 주변을 확인해 본다. 낙산 성곽 트래킹은 김철호 회원이 기획한 코스이다. 한 시간 반 동안 도심에서 느껴볼 수 있는 최고의 힐링 선물을 제공했다.

사진기자의 전직을 어디를 가도 숨길 수 없는 듯하다. 모두 휴대폰으로 주변의 풍경을 담기 바쁘다. 담은 사진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질 것이고 함께 공유하며 다른 공간에서 같은 시간의 동질성을 느낄 것이다. 600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성곽의 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위치에서 충실했다. 마치 우리가 그동안 살아온 것처럼...

“이 코스는 아침에 추리닝 입고, 입에는 칫솔하나 물고, 목엔 수건 두르고 나오면 딱이네”하는 강두모 회원의 말에 모두 박장대소하며 가던 길을 멈춘다. 사이사이 함께 기념사진도 남기고, 끼리끼리 두런두런 근간의 근황을 체크한다. 정보의 공유 시간이다. 앞서가던 임형식 회원의 큰 목소리가 적막을 깬다. “여기 공원이 있네. 이리로 내려가면 대학로야. 대학로...” 오늘 가이드는 이승재 회원인데 하는 생각도 잠시 “벌써 정상이네... 저리로 가면 동대문이고..” 사이비 가이드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사이 회원들의 각자의 선 방향에서 시계를 확인하고 있다. “이쪽은 어디지? 저 건물이 성균관 대학교인가?”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누군가는 “이쪽에 집을 하나 사서 한성대 학생 상대로 임대 사업해도 좋겠네.”하는 소리.“도 귓전으로 흐른다. “예전 이곳에서 전경을 찍어서 마감했다”며 잠시 회상에 잠기는 회원들도 있고 정상에서 잠시의 휴식은 또 다른 에너지를 제공하며 하산을 재촉했다. 낙산 정상에서 북악산 자락과 더 멀리 북한산이 손에 잡힐 듯 한 여운을 뒤로한 채...

동대문으로 내려오는 길 또한 아기자기하다. 마치 60년대의 서울 사대문안의 골목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느낌이다. 사람하나 겨우 비껴가야만 통과할 것 같은 골목길에서 우리는 유년시절의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 지어 본다. 전봇대마다 붙여놓 임대 포스터를 연신 핸드폰에 담는 김동준 전임회장을 보며 무슨 이유가 있음을 암시도 해본다.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김문권 회장도 퇴색한 동네의 풍경과 집들을 바라보는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흘러간 팝송을 흥얼거리며 내려가는 양동출 회원의 콧노래에 박자를 맞춰 내려가는 발아래 두산타워의 커다란 건물이 동대문임을 암시하고 앞선 회원들이 인원을 잠시 확인하니 한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박교원 회원의 연초타임으로 잠깐 잊었다. 성곽 담에 기대 내뿜는 새 하얀 연기는 공기속으로 자취를 감추며 사라진다. 이제 우리도 이 성곽에서 사라져야 할 시간이다.

동대문은 요즘 중국 관광객들로 한창이다. 동대문의 먹거리 중에 우리처럼 중년의 사람들에 ‘닭한마리 칼국수’는 최고의 음식이다. 각자의 기호에 맞게 양념한 양념장에 백숙같이 삶아진 닭의 한 부분들을 찍어먹으며 음미하는 맛은 추억의 음식이다. 감자전분과 김치 양념이 베인 국물에 국수를 넣고 끓여먹는 칼국수 맛 또한 일품이다. 거기에 우리 회원들의 영원한 친구 ‘소주’와 ‘막걸리’는 트래킹에 굶주렸던 시장기에 톡 쏘는 청량제 역할을 해준다. 처음 만난 주인아줌마의 착 감기는 친절 또한 오랜만에 느끼는 정겨움이다.

이제 회원들 모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만남은 이별을 예고하고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의미한다고 했다. 오늘 함께 공유한 즐거웠던 시간들이 함께했던 회원들이 앞으로 보낼 날들의 또 다른 에너지가 되었으며 한다. 함께 공유했던 시간은 추억으로 남게 되고 우리는 그 추억의 앨범을 뒤적이며 살아가는 미생인지도 모른다.

[ⓒ 스마트 시니어뉴스 욜드(YOLD).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