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일상과 생각/ 문장(文章)을 따라 걷는 선한 동행 "나는 왜 글을 쓰는가"
- 박정하 일상과생각 / 박정하 칼럼니스트 / 2026-08-18 09:43:36

지난 6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블로그에 「감자 한 알의 아디아포라」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의 오랜 친구로부터 안부와 함께 글에 대한 짧은 메시지가 날아왔다. 내 글의 어휘가 다소 어렵고 현학적으로 느껴져 가슴에 바로 와닿지 않는다는, 다소 직설적인 아쉬움의 표현이었다.그러나 그 글은 내 알량한 지식을 뽐내려 쓴 글이 아니었기에 처음엔 적잖이 섭섭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누군가에게는 내 글이 그렇게 다가갈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 솔직한 피드백 역시 그날 내가 쓴 글의 주제처럼 그저 하나의 ‘아디아포라’일 뿐이었다. 친구에게는 “나이 들어 즐기는 소소한 지적 유희로 읽고 쓰는 일이니 그저 그런냥 해주소.”라며, 섭섭함 대신 한 발 물러선 마음으로 답을 건넸다.

그렇다면 나는 왜 매일같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묵묵히 글을 쓰는가. 사람들은 흔히 자기 생각과 현실의 삶이 온전히 일치해야만 비로소 글을 쓸 자격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저 사람은 글은 고상하게 쓰면서 정작 행동은 왜 저 모양일까"라는 비아냥을 두려워해 붓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처음부터 완벽한 성인군자가 있어서 고운 글을 쓰는 것일까.
내가 글을 쓰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표현' 이전에 '지향(指向)'에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때로 현실의 내 모습보다 훨씬 더 다정하고, 더 깊고, 더 고운 문장을 적어 내릴 때가 있다. 아직 내 인격과 삶이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꾸만 좋은 표현, 선한 언어를 다듬어 쓰는 까닭은, 지금은 비록 미흡할지라도 내가 자꾸 글로서 그리 적어 내려가면 내 삶 역시 마침내 그 문장을 닮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말은 공중으로 산화되어 사라지지만, 종이 위에, 그리고 모니터 위에 또박또박 적힌 글은 거울처럼 나를 끊임없이 비춘다. 내가 쓴 고운 문장을 내 눈으로 다시 읽고, 내 마음으로 들으며, 나는 매일 조금씩 내가 꿈꾸는 사람이 되어간다. 글은 과거나 현재의 나를 단순히 기록하는 매체가 아니라,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내일의 나를 끌어당기는 '선한 이정표'이자 깊은 '수양(修養)'인 셈이다.

오늘도 내 블로그를 찾아와 진지하게 마음을 나누어 주는 참 고마운 ‘찐 독자들과 이웃들’이 있다. 대개는 일면식도 없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들과 주고받는 다정한 댓글과 안부 속에서, 글을 매개로 서로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 번져가는 것을 느낀다. 나이 들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다정한 유희. 오늘도 나는 내 삶보다 조금 더 고운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그 문장과 발걸음을 맞추어, 나 자신도 조금씩 더 다정하고 선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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