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is / 1896년 4월 28일, 당대 최고이 페미니스트 나혜석 탄생> 인형이 되길 거부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 Midlife Culture / 박인권 / 2025-04-28 10:39:54
- 그녀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극적인 삶, 파란만장한 일생, 이란 수식어가
내 인생이 너무 평탄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는 자신의 손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으며 말했다. 고생은커녕, 설거지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을 법한 희고 가는 그녀의 손엔 각각의 손톱마다 다른 색깔의 매니큐어가 알록달록, 불량식품처럼 발려있었다. 평소 심플한 디자인의 옷을 즐겨 입고 긴 생머리를 고수하던 그녀로선 의외의 취향이라 생각하며 나는 다소 긴장했다. 안 그래도 결혼 후 연락이 뜸하다 문득 전화를 걸어와, 사는 것이 지루하고 갑갑하다며 한바탕 가슴을 철렁하게 한 뒤 만났던 참이었다.
그녀들 속의 무수한 나혜석이여, 피어라 피어
술을 마시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이미 세 병째의 맥주를 주문하는 폼이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성실하고 선량해보였던 친구의 남편을 떠올리며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권태기냐며 농을 건넸지만 친구는 전혀 웃질 않았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내가 쓴 글을 읽지 않아. 친구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나 보았다. 대학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교수님들의 총애를 받던 그녀는 등단을 꿈꾸며 문예대회에 도전 중이었다. 친구는 이야기 끝에 나혜석을 예로 들었다. 나혜석이 왜 최린과 바람이 났는지 아니. 그건 다 남편이 나혜석을 제대로 읽어주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녀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극적인 삶, 파란만장한 일생, 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3·1운동에 가담하려다 옥고를 치르고 ‘폐허’ 동인을 거쳐 신문의 논고와 소설 등을 통해 페미니스트 문필가로도 활동했던 나혜석은 일본 유학 시절, 문학청년 최승구를 만나 사랑했지만 그가 폐결핵으로 요절하자 집안의 독촉에 못 이겨 김우영과 결혼하게 된다.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나를 사랑해주시오.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오.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케 하여 주시오.
그녀가 결혼하면서 내세운 위의 세 가지 조건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심지어 신혼여행을 첫사랑인 최승구의 묘를 찾아가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하니 당대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이자 신여성으로서의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결혼 후, 나혜석은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해외여행을 하던 중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1년간 하게 되고 그때 만나게 된 최린과의 연애로 훗날,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는다. 이혼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회의 지독한 냉대와 멸시였다. 이에 나혜석은 억울한 심경으로 자신의 사생활과 보수적인 조선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이혼고백서>를 발표하고 최린에게 ‘정조유린’을 이유로 보상금을 요구하는 제소를 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이미 사회에서 미운 털이 박힌 그녀를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빚었고 결국 나혜석은 그 진보적인 사상과 행동으로 인해 빈곤과 고독 속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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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남루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한번쯤은 나혜석이 되어보고 싶어. 친구의 말에 나는 고리타분한 선생님처럼 되물었다. 그래서, 나혜석처럼 불꽃같은 연애 한 번에 재능과 생을 모두 걸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친구는 손가락에 낀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적어도 불만족스런 안정 따위와 적당히 타협하는 것보단 낫잖아, 라고 대꾸했다. 그녀는 적어도 열정적이었고 늘 앞에 서있었고, 맞서 싸웠잖아. 밋밋하게 사는 건 지금까지 로도 충분해. 누군가의 마음에 새겨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
친구를 만난 뒤, 나혜석의 작품들을 찾아보다 그 중 <화냥전 작약>이란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비록 유화물감을 아낀 흔적에서 말년의 궁핍이 느껴지긴 했지만 푸른 뜰에 타오를 듯이 강렬하게 피어난 붉은 작약이, 그녀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작품에의 의지를 호소하는 듯 했다. 그 선명한 색채의 대비 위에, 알록달록한 친구의 손톱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나의 친구가 최선을 다해 그녀가 바라는 삶을 이뤄내길 진심으로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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