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Column / 미완성의 寶庫 예술가의 작업실

Culture / 편집국 기자 / 2025-09-28 13:25:47

[욜드(YOLD)= 손다영 아르케컬처 대표] 월요일 아침은 여느 날보다 조금 더 고단하다. 휴식보다는 노동에 익숙해진 삶인데 벌써 커피 탄내가 그립다. 아침 뉴스를 통해 유명인의 죽음 소식을 접한다. 사망 경위가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과로사로 추측하는 댓글들이 많다. 최초의 과로사 사례는 1969년 일본 신문사 사원의 뇌졸중으로 인한 돌연사였으며 이제는 심심찮게 관련 뉴스들을 접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우리네 이야기다. 과로는 누적되며, 때때로 삶은 무겁다.

 
예술가들은 삶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낼까? 그들의 작업실에는 휘갈겨 쓴 원고, 드로잉, 악보들이 가득하다. 실패작인지 미완성인지 알 수 없으며 때가 되면 다시 주목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모차르트의 레퀴엠, 바흐의 푸가의 기법은 클래식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미완성’ 작품들이다. 슈베르트는 31살의 짧은 삶을 살았고 생을 마감하기 6년 전 여덟 번째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다. 모차르트는 당시에 베일에 싸여있던 자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받는다. 바흐는 ‘푸가’라는 작곡 기법의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해 대작 『푸가의 기법』을 기획했다.  

▲photo-puxabay
세 사람은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작품을 위해서 펜을 들었다. 슈베르트는 600여 개의 가곡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한 대를 소유하지 못했다. 돈과 명성보다는 음악적 영감에만 충실했다. 모차르트는 조금 더 현실적인 인물이다. 왕실과 귀족의 후원을 받아 생활하는 삶에서 자립적인 음악 생활을 시도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악단에서 나와 빈에서 독립적인 예술가의 삶을 시작한다. 과로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흐는 신앙적, 예술적, 철학적 탐구심을 동력으로 삼아 작곡을 시작했지만, 당시 거의 실명 상태였고 백내장 수술이 잘못되어 급격한 건강 악화를 겪는다. 육체적 고통에도 그들은 작업실로 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탁월한 음악에 대한 욕망은 평생에 걸쳐 닦아온 본능이기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가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로 여행을 떠난다. 상인들과 외국인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무역을 통해 크게 부를 쌓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공화국은 혼외자와 전염병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 경제적인 이유로 버려진 아이들이 많았고 가톨릭 국가에서 피에타(자비)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와 버려진 자들을 거두어들였다. 비발디는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라고 불리는 교육기관 겸 보육원에서 여성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감독하며 작곡과 지휘를 했고 여성 음악가로 성장한 소녀들은 스승 비발디의 음악으로 기량을 향상했으며 도시의 품격을 상징하는 문화사절단의 역할을 했다. 공화국의 음악 외교는 사제 비발디의 작업실로부터 출발했으며 출중한 재능을 밑천 삼아 빈, 로마,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도시들을 돌면서 작품을 알리고 후원자를 모집했다. 말년은 어땠을까. 후원자들은 떠나고 청중들의 취향 변화로 인해 가난한 채로 죽음을 맞았다. 사제 서품을 받았으므로 결혼이 불가능했고, 장례는 베네치아가 아닌 빈의 성 스테판 대성당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간소한 장례식’으로 음악 없이 치러졌다. 죽음을 앞둔 순간, 부디 음악만은 함께하였기를.
▲photo/pixabay
비발디가 죽은 지 200여 년이 지난 1976년, 미술 수집가 페기 구겐하임은 베네치아에 미술관을 설립한다. 당시 많은 미술작가가 전쟁으로 인해 망명길에 올랐다.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파리에서 망명자처럼 살았으며 막스 에른스트는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혀 수용소에 가게 되었다. 칸딘스키는 러시아 혁명 이후 추상 미술을 위해서 독일로 망명하였고 네덜란드 출신인 몬드리안은 활동지인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망명한다. 미국의 젊은 화가 잭슨 폴록은 대공황 시기에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생계를 유지했지만 알코올 중독과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페기 구겐하임의 후원을 받아 새롭게 도약한다.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 유대계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정체성 혼란을 겪었고 국제적 명성을 얻을 만큼 성공했지만 깊은 우울함에 시달렸다. 크나큰 비극을 겪은 이들의 작품들이 베네치아로 몰려들었다. 동시대 예술가들의 삶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예술가들의 작품이 우리가 살아낸 시대의 증거가 된다. 깊은 우울과 상처가 있지만 작업을 통해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지는 것이 예술가들이다. 결코 쉽게 지지 않는 사람들의 작품을 감상해 보자. 누구라도 그들에게 위로받을 것이다.

* 손다영 아르케컬처 대표 / 바이올리니스트
-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바이올린 전공 학사 졸업䟃
-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바이올린 전공 석사 수료
현재 아르케컬처 무지카 클래시카 음악회(2022~), 금요반달클래식클럽(2022~), 용인일보 오피니언(2025~) 강연 및 기획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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