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만이 아닌 세계의 자연유산 거문오름

Midlife Travel / 오수정 칼럼니스트 / 2023-09-20 16:09:44
- 세계 최대의 용암동굴을 생성시킨 모체가 바로 거문오름

[스마트시니어뉴스=오수정 기자] 삼백 육 십 여 개나 되는 제주의 오름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오름을 먼저 골라야 할까. 제주의 오름 중 유일하게 UNESCO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이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제주의 조천읍 선흘리와 구좌읍 덕천리에 걸려 있는 거문오름(拒文岳)이 바로 그곳이다.
 
지난 2007년 6월 27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 31 차 총회에서 세계유산위원회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의 등재를 의결했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이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과 ‘성산일출봉’ 그리고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등 3개 지역을 이르는 것으로, 제주도의 오름이 유일하게 세계자연유산에 포함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특히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분출된 용암류가 지형적인 경사면을 따라 북북동 방향으로 해안까지 흘러가며 형성된 용암동굴군이다. 이는 약 30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 사이의 시기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선흘수직동굴, 벵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동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이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속한다. 다시 말해 세계 최대의 용암동굴을 생성시킨 모체가 바로 거문오름인 것이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과 곶자왈 만들어
그런데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류가 용암동굴만 만든 것은 아니다. 분화구를 통해 유출된 막대한 양의 용암은 지형경사를 따라 구불구불 흘러가며 독특한 곶자왈 지형을 형성했다. 곶자왈의 ‘곶’은 제주어로 ‘숲’ 을 뜻하며, ‘자왈’은 자갈이나 바위를 뜻하여, 곶자왈이란 ‘돌이 많은 숲’ 을 의미한다. 숲이 우거져 원시림을 이루게 된 곶자왈이 제주의 허파라고 불리고 있으니 거문오름이 제주에게 선사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거문오름의 탐방로는 분화구내의 알오름과 역사유적지를 볼 수 있는 분화구코스와 오름 능선을 따라 9개의 봉우리를 연결하는 정상코스 등 두 개의 탐방로가 있는데 그 모양이 태극을 닮았다 하여 태극길로 불리고 있다. 총 8 Km로 3시간 30분이나 소요되는 거문오름을 탐방하려면 탐방 2일전까지 반드시 전화 예약을 해야 한다.

거문오름 탐방안내소에서 시작된 거문오름 오르는 길은 알 수 없는 중압감으로 시작됐다. 그것은 거문오름의 흙과 돌이 유난히 검어 왠지 신령스럽고 어둡고 음산한 느낌이 원인이기도 했지만, 현지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숯가마 터와 일제 강점기의 잔해들 그리고 4.3 사건에 이르기까지 제주 근현대사의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마주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2일 전까지 예약해야 탐방가능
우선 숲이 우거진 분화구코스를 따라 길을 잡자 눈에 띄는 건 용암협곡. 화산 분화구로부터 공급되는 용암류가 연속적으로 흐르면서 용암동굴의 천장 및 주변 가장자리가 붕괴되면서 형성된 구조인 용암협곡을 지나자 국내 최대인 식나무 군락지와 붓순나무 군락지가 차례로 나타난다. 식나무와 붓순나무는 관상수로 각광받고 있는 희귀식물로 이곳처럼 군락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는 설명. 특히 거문오름 일대에는 삼나무림, 낙엽활엽수림, 관목림 및 초지, 상록활엽수림 등 4개의 숲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처럼 아열대, 난대, 온대에 거쳐 식물들이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거문오름이 다양한 생장 환경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분화구내 전망대를 지나자 일본군동굴진지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의 자료를 보면 패망직전이던 1945년 8월 제주도에는 7만 5천명의 일본군이 주둔했던 기록이 나온다. 당시 제주도민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던 일본군이 최후의 보루로 지어놓은 동굴진지와 병참도로, 주둔지 등 군사시설이 아직도 남아 탐방객의 눈길을 잡는다.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들이 아닐 수 없다. 전망대 부근의 숯가마 터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삶의 애환의 흔적이다. 아래쪽 둘레가 약 25 m, 높이가 약 2 m 안팎인 숯가마 터는 현무암을 아치형으로 둥글게 쌓고 가마 안쪽에 진흙을 바르고 가마 뒤쪽에 숨구멍을 냈다. 숯가마 터와 숯을 굽는 동안 거처했던 초막의 흔적들까지 지난했던 당시 생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거문오름 분화구에서 쏘아 올려진 용암 덩어리가 공중에서 회전하면서 고구마 모양이 되어 떨어진 화산탄의 모습은 탐방객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또한 정상코스로 들어서기 직전에 있는 매우 독특한 용암동굴이 있으니 바로 선흘 수직 동굴이다. 이 수직 동굴의 입구 직경은 약 2~3 m이며, 깊이는 약 35 m, 경사는 70~90˚ 에 달해 바닥에서 두 방향의 수평굴과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다. 수평굴과 수직굴이 만나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용암지형에 다들 감탄을 자아낸다.

분화구코스를 벗어나 거문오름을 둘러싸고 있는 아홉 개의 봉우리인 9룡(龍)을 지나 456m의 거문오름 정상에 다다르니 한라산과 제주 동부의 오름 들이 장관이다. 맑은 날엔 제주 오름의 3분의 1이 이곳에서 보인다고 하니 두 팔을 벌려 심호흡을 해보는 맛 또한 이곳에 오른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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