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일상고 생각 / 말보로, 길 이름이 전설이 되기까지
- 박정하 일상과생각 / 박정하 칼럼니스트 / 2026-08-06 09:58:43

읽다 보니 80년대 주말의 명화 같기도 하고, 아침 드라마 같기도 했다. 픽션의 냄새가 물씬 풍겼지만, 이상하게 눈을 떼지 못한 채 끝까지 읽게 되었다. 마지막, 여자가 남긴 한 줄의 유서에서는 잠시 마음이 먹먹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감성도 잠시, 벼락같이 팩트체크 본능이 꿈틀거렸다.
"잠깐, 진짜라고?"

'May as Mild as May(5월처럼 부드럽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립스틱 자국이 묻어도 티 나지 않도록 필터 끝을 붉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하자, 1950년대 카우보이 '말보로 맨'을 내세운 남성적인 이미지로 완전히 탈바꿈했고, 그때부터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브랜드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입어야 오래 살아남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참 어쩔 수 없이 감성적인 존재다. 우리는 사실보다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하고, 숫자보다 사연을 기억하며, 팩트보다는 그 팩트가 전해주는 온기와 감정을 오래 품고 산다. 물론 세상을 어지럽히고 상처를 주는 가짜 뉴스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이런 '착한 낭설'은 세상을 팍팍하지 않게 만드는 소소한 양념이 되기도 한다. 사실만 앞세우는 세상에서도 가끔은 누군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작은 동화 한 토막에 기꺼이 속아주는 즐거움도 있는 법이니까.

생각해 보면 말보로도 결국 이야기로 기억되는 브랜드가 되었다. 런던의 길 이름에는 첫사랑의 전설이 덧입혀졌고, 여성용 담배는 카우보이의 신화로 다시 태어났다. 사람은 결국 상품보다 그 상품에 얹힌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하는 모양이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싱거운 전설 하나를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한 편의 글로 남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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