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일상과 생각 / 나담, 초원에 남은 휘파람 소리

박정하 일상과생각 / 박정하 칼럼니스트 / 2026-08-02 13:16:06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평소 정치 소식에는 통 관심이 없고, 세상 돌아가는 뉴스도 그리 챙겨 보지 않는 편이다. 현직 대통령이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방문했는지조차 내 일상과는 한참 먼 이야기다. 그래서 남들은 이미 다 아는 소식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해 그곳 최대의 축제인 '나담'에 참석했다는 기사를 뒤늦게 스치듯 보게 되었다. 정치인의 행보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나담'이라는 이름 하나가 가슴 한구석에 묻혀 있던 스무 해 전의 기억을 불쑥 깨워 놓았다.

2006년 이맘때였다. 나는 어느 민간 음악협회의 요청을 받아 그 단체의 간부 한 분과 함께 몽골 국방부 산하 교향악단에 악기를 기증하러 울란바토르를 찾았다. 바이올린과 첼로, 트럼펫 등 그들이 간절히 원하던 현악기와 관악기 스무 점 남짓을 조심스레 비행기에 실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한 시기는 몽골 최대의 민속 축제인 '나담' 기간이었다. 활쏘기와 씨름, 경마는 물론 오페라와 전통 연극, 발레 등 다양한 공연이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며 울란바토르 전체가 축제의 열기로 가득했다.

악기를 전달한 다음 날, 안내를 받아 그 교향악단의 연습장을 찾았다. 지휘자는 단 두 사람뿐인 한국인 손님을 위해 감사의 뜻으로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그들이 선택한 곡은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제2번 c♯단조'. 곧 있을 공연을 준비하며 연습하던 곡이라고 했다. 큰 기대 없이 숨을 죽이고 듣기 시작했지만, 첫 음이 울리는 순간, 나는 숨소리마저 죽인 채 그 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몇몇 단원들이 바로 전날 우리가 전달한 새 악기로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손에도 채 익지 않았을 악기였는데도 연주는 놀라울 만큼 안정되고 아름다웠다.


어안이 벙벙해 있던 내게 당시 통역을 맡았던 몽골국립대 여학생이 조용히 귀띔해 주었다.

"단원 대부분이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이에요. 실력은 뛰어나지만 몇몇은 악기가 너무 낡아서 그동안 연주 때 어려움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소련 시절 몽골의 역사적 배경을 떠올리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연주를 들었던 세 사람이 기립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지휘자는 이번에는 남성 단원 두 사람을 앞으로 불렀다. 그리고 몽골의 전통 성악인 '흐미(Khöömii)'를 들려주었다. 한 사람의 목소리에서 묵직한 저음과 휘파람처럼 맑은 고음이 동시에 울려 나오는 신비로운 소리. 그 낯설고도 장엄한 울림을 듣는 순간, 전날 몽골 국립박물관에서 보았던 몽골 제국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지도가 떠올랐다. 그 지도에는 '한반도에서 불가리아 평원에 이르는 제국'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광활한 초원을 달리던 바람도, 유럽 끝까지 뻗어 나갔던 그들의 기상도, 어쩌면 저 신비로운 '흐미'의 울림 속에 함께 살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당시 울란바토르 시내를 달리던 자동차의 상당수는 한국에서 건너간 중고 차였다. 버스에는 '불광동', '미아리' 같은 한국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노선표조차 지우지 않은 채 초원을 달리는 버스를 보며, 한국을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라 부르며 동경하던 몽골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정상들의 화려한 외교나 거창한 정치적 수사보다 사람과 사람을 오래 이어 주는 것은, 어쩌면 그날 우리가 전했던 악기 몇 점과 그것으로 울려 퍼졌던 진심 어린 음악 한 곡이 아니었을까.

8월이다. 폭염이 절정에 이르러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친다. 하지만 산은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오듯, 이 무더위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다. 머지않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는 문득 몽골 초원에서 들었던 '흐미'의 휘파람 같은 소리를 떠올릴 것 같다. 정치에는 무심해졌지만, '나담'이라는 이름 하나는 스무 해 전 몽골 초원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날의 음악을 다시 내 마음속으로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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