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컬럼 - 일상과 생각 / 비장함이라는 삶의 허영

박정하 일상과생각 / 박정하 칼럼니스트 / 2026-08-17 07:19:15
Elbert Hubbard (1856~1915)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이웃 블로그에서,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해 온 한 글귀를 다시 만났다.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어차피 아무도 살아서는 못 나간다.”

미국의 사상가 엘버트 허버드가 남긴 이 짧은 말은 읽을 때마다 피식 웃게 만들다가도, 이내 묘한 서늘함을 남긴다. 같은 말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는다. 이웃의 글이 따뜻한 위로였다면, 내게 이 말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허버드는 마크 트웨인이나 오스카 와일드처럼 날카로운 유머로 진실을 찌르는 사람이다. 그의 말은 언뜻 농담처럼 들리지만, 허무주의자의 냉소로만 읽기엔 지나치게 정확하다. “어차피 다 죽는데 뭘 그렇게 아등바등해?”라는 표면적 의미 너머, 죽음을 들이밀어 삶을 가볍게 만들려는 역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삶의 어떤 시절은 그랬다. 실패는 끝처럼 느껴졌고, 뒤처짐은 곧 낙오였다. 타인의 인정이 사라지면 내 존재의 가치마저 흔들렸다. 완벽주의라는 굴레를 쓰고 스스로를 옥죄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 처음 접한 허버드의 말은 내게 “너무 심각하게 구는 거 아니야?”라고 툭 어깨를 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다시 마주한 이 말은, 이제 위로보다 냉정한 통보에 가깝게 들린다. 모든 승부는 결국 무승부라는 진실이다.

 

우리는 삶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평가받는 삶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인생을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삶 자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우리를 지나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했을 때의 창피함, 남들보다 초라해 보일지 모른다는 공포, 비교 속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 우리는 정작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지는 삶을 관리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부자도, 권력자도, 천재도, 미인도 결국은 빈손으로 떠난다. 마지막 출구가 모두에게 똑같이 열려 있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려는 체면과 비교의 성벽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진지함은 미덕이지만, 비장함은 자아의 과잉이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걱정하고, 내일 사라질 것처럼 조급해한다. 하지만 삶은 생각보다 짧고, 인간은 생각보다 작다.

스토아 철학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우울해지기 위함이 아니듯,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지나치게 거창한 주인공으로 착각하지 않기 위함이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관점 앞에서 보면 오늘의 대부분의 걱정은 놀랄 만큼 작아진다. 이것은 인생을 허투루 살라는 뜻은 아닐 게다. 매 순간을 ‘내 인생의 최종 판결’처럼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뜻이며,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되 내 이름 앞에 붙은 타이틀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갑옷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는 어차피 이 짧은 여행을 함께 지나가는 동행자 들일 뿐이니 말이다. 그러니 오늘도 묵묵히 걸어가되, 가끔은 뒤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향해 씩 웃어주자. 우리는 그리 심각하게 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진지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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