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ro / 조대안의 LP Story, 양희은 ‘거치른 벌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도장반)

Midlife Culture / 조대안 칼럼니스트 / 2025-10-12 20:52:42
- 방송금지 처분으로 시중 유통음반까지 전량 회수되어 폐기처분 당해
- 이후 수없이 재발매된 음반들은 수록곡도, 음반번호도, 심지어 발매한 음반사까지 달라

1979년에 서라벌 레코드에서 발매한 양희은의 데뷔 초기 저항가요 독집 앨범이다. 음반의 재킷은 음각으로 새겨진 양희은 이름의 빨간색 도장이 아무것도 없는 흰 바탕 정 가운데 찍혀 있어 ‘도장반’이라고도 불린다. 1면에는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밤뱃놀이」, 「고무줄놀이」, 「늙은 군인의 노래」, 「알캉달캉」, 2면에는 「천릿길」, 「두리번 거린다」, 「식구생각」, 「저높은 곳을 향하여」 총 9곡이 수록되어 있다. 초반의 뒷면에는 노래하는 양희은의 전신 컬러사진이 들어있고 타이틀곡은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으로 나와있다.

이 음반은 방송금지 처분으로 시중 유통음반까지 전량 회수되어 폐기처분 당해 극히 귀한 음반이 되었다. 바로 이 앨범의 A면 4번 트랙 「늙은 군인의 노래」 때문이었다. 금지곡이 된 이 노래가 빠지면서 다른 곡이 대신 자리를 채우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재반과 재재반이 나왔고 모두 여섯 가지 다른 버전이 혼재한다. 재반은 뒷면 사진이 양희은의 상반신 흑백사진인데 이후 수없이 재발매된 음반들은 수록곡도, 음반번호도, 심지어 발매한 음반사까지 다르다.

1970년대 전설적 포크 가수인 김민기는 1974년 10월 미군 부대 카투사로 입대해 AFKN 방송국에 배치 받았고 편안한 군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때 1975년 박정희 유신 독재 반대 집회에서 그가 만든 노래 아침 이슬(1971)은 시위대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고, 작곡자 김민기의 이름이 경찰에 알려졌다. 느닷없이 보안 부대로 잡혀간 그는 곧바로 강원도 인제군 원통리 제12사단 51연대 1대대 중화기 중대로 재배치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병기선임하사가 30년을 복무하고 전역을 앞둔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막걸리 2말을 받고 지은 노래가 바로 1976년 겨울 탄생한 「늙은 군인의 노래」다.


청춘을 군대에 바친 한 하사관의 회한과 아쉬움, 소박한 나라사랑의 마음이 담긴 이 노래는 곧 병사들에게 구전되어 널리 불려졌다. 그가 제대한 후 「늙은 군인의 노래」는 1978년 양희은의 이름을 빌려 한국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는 통과하지만 곧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군부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라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등 패배주의적인 가사가 군인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였다.

유신체제 하에서 국방부 장관 지정 금지곡 1호가 된 이 노래가 그 생명을 이어간 것은 독재에 저항하던 대학가와 노동현장이었다. 가사 속의 군인은 투사, 노동자, 농민, 교사 등으로 바뀌어 불리면서 대표적인 저항가요로 오늘날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는 원래 의미인 소박한 나라사랑으로 해석되어 정부행사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2018년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모곡으로 불렸다.

후 김민기는 자신의 이름으로 어떤 노래도 발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상록수), 「늙은 군인의 노래, 「식구 생각, 「밤뱃놀이 등을 서울대 미대 친구 김아영과 양희은, 한규정 등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실제로 「늙은 군인의 노래는 초반에 김민기가 아닌 양희은 작사, 김아영 작곡으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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