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 전유성 선생님을 보내며, "전유성 선생의 독과외"

Midlife Culture / 조대안 칼럼니스트 / 2025-10-11 23:12:27

[욜드(YOLD)=조대안 칼럼니스트] 지난 30여 년 동안 수집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희귀 LP 3천여 장을 수집했고, 현존하는 뮤지션들에게 직접 사인을 받고 있으며, 또한, 자신이 연주하던 기타에도 사인을 받는 일에 몰두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 포크의 선구자 이정선 선생님께서 천둥 같은 질문을 던지셨다.

“그 많은 걸 수집해놓으면, 누가 보러 올 건데?”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실제로 전국의 문학관, 사설 미술관, 박물관은 적자에 허덕이며 운영난을 겪다가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나는 조심스레 여쭈었다.

“선생님, 좋은 방법이 있겠습니까?”
“나도 몰라. 그거 가르쳐줄 딱 한 사람이 있지. 전유성 선생을 찾아가 물어봐.”

다음 날, 무작정 전유성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K-포크뮤직 박물관을 준비하고 있는데 자문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는 웃으며 “독과외는 수업료가 비싼데”라고 하셨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지리산 인월 제비카페로 찾아뵈었다.

마침 오전 11시쯤 도착해 커피 한 잔을 하고 점심을 대접하고자 하니, 선생님께서는 함양에 단골집이 있다 하시며, 15km 떨어진 함양 시내의 ‘장수 할머니 주전자 국수집’으로 이끌었다. 단돈 6천 원짜리 주전자 국수를 시켜놓고, 산삼에게 음악을 들려주던 행사, 청도 철가방극장 뒷이야기 등 진담과 농담을 섞어 풀어놓으셨다. 이 국숫집은 전유성 선생님이 방송에서 직접 소개하고 출연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유명 맛집이기도 하다.

식사 도중 선생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공연장을 지어야 해!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려면 공연장이 있어야 하고, 주차장 운영도 묘미가 있어야 해. 3시간 이내는 요금을 받고, 3시간 이상은 무료로 하면 돼. 그러면 사람들은 주차요금 아까워서라도 오래 머물 수밖에 없지.”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공연장을 짓는 데 공사비가 얼마나 들어야 할까요?”
“17억이면 충분해. 예산이 부족하면 7~8억 정도로도 가능해. 100석에서 150석 규모의 공연장은 충분히 지을 수 있어.”

이어 선생님께서는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올가을 나랑 같이 프랑스와 일본을 가자. 직접 보면 이해가 빠를 거야.”
“그럼 일본부터 가보시지요.”
“좋아, 10월 말쯤으로 하지.”

그렇게 일본 공연장 견학을 약속했고, 열흘에 한 번씩 찾아뵙고 독과외처럼 경험담을 듣기로 했다.

 

하루는 전유성 선생님과 함께 함양 시내의 독립서점 ‘오후공책’을 찾았다. 독서광이신 선생님은 항상 읽을 책을 주문하며, 동네 책방을 응원한다고 하셨다. 감명 깊은 책이나 신간은 여러 권씩 주문해 학교에 기부하시기도 했다.

“요즘은 다들 인터넷으로 할인받아 책을 사잖아. 그래서 동네 서점들이 문을 닫는 거야. 나는 책방을 살리고 싶어.”

선생님은 ‘오후공책’에서 강연도 열고, 서울에서 찾아온 지인들을 데리고 일부러 책방을 찾곤 하셨다. 그날도 선생님이 고르신 책값을 대신 계산해드리며, 나도 책 몇 권을 더 보탰다.

또 하루는 지리산 인월에 다녀오시던 길에 전화를 주셨다.

“이승우 작가의 『고요한 읽기』를 차에 두고 내렸네.”

그러시면서 이승우 작가의 약력과 수상 이력을 설명해 주시며,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훌륭한 작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덕분에 지금도 내 책상 위에는 『고요한 읽기』가 놓여 있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실상사 앞 ‘맛있는 부엌’ 장독대에는 선생님의 된장독이 놓여 있다. 항아리에는 “전유성 2025년 5월 27일”이라고 정겹게 적혀 있었다.

“내년 봄에 오면 된장 좀 줄게.”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지리산 요리학교인 ‘맛있는 부엌’에서 선생님이 선물해 주신 간장은 아직도 개봉하지 못한 채, 불로초처럼 귀히 모시고 있다.

인월에서 함양으로 오가는 지안재와 오도재 고갯마루, 그리고 실상사 넓은 뜨락에는 늘 선생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선생님께서 지리산의 별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만 헌정의 마음을 담아 〈지리산별〉이라는 노랫말을 바치며, 그동안 독과외로 가르침을 주신 수업료 대신 전하고자 한다.

별처럼 살다가, 별이 되어 떠나신 선생님.
오도재 밤하늘을 밝히는 영원한 별로 빛나시길.

지리산의 별

1절
하늘의 별빛보다 빛나던 바보여
세상에 웃음만 주던 천재 성자여
당신은 단 한 번도 웃지 못하며
세상을 웃기던 그 사람, 그 사람

후렴
지리산 오도재 별이 된그대여
영원히 영원히 빛나고 있네
인사동 종소리 메아리 치면
그대의 목소리 다시 들려와~

2절
눈물도 웃음으로 만들던 그 사람
청도의 철가방은 떠나갔어도
인월의 앞마당 울리던 그노래
별이 되어 떠나버린 그 사람

후렴 (반복)
지리산 오도재 별이 된그대여
영원히 영원히 빛나고 있네
인월의 밤하늘 비추는별빛 되어
당신의 웃음이 다시 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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