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is , / 1963년 4월 25일, 민영방송인 동아방송 탄생> “ HLKJ 여기는 DBS동아 방송입니다.”
- Midlife Culture / 최장용 / 2025-04-25 09:22:39
[Smart Senior News=최장용 기자] 1963년 4월 25일 새벽 5시 30분 ! 우리나라에 또 하나의 민영방송이 탄생 되었다. 출력 10㎾, 호출부호 HLKJ, 주파수 1230㎑로, 출발한 동아방송은 언론의 자유와 편성의 자주성을 견지하고 방송의 권위와 공신력을 드높이며, 문화발전과 산업경제 번영, 사회순화에 기여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뉴스로부터 첫 방송이 시작되었고 이것은 세계 방송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으로 강력한 스테이션 이미지와 뚜렷한 진로를 천명한 것이기도 했다.
“ 오늘 4월 25일 여명이 멀리 동터오는 지금 동아방송의 탄생을 알리는 고고의 전파가 여러분의 가정을 찾아 개국의 첫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로 시작된 동아 방송의 첫 인사는 전영우 아나운서실장의 목소리로 새벽의 정적을 뚫고 힘차게 메아리 쳐 갔다. <東亞方送史 >이로부터 17년 7개월 동안 동아방송은 제작진들이 감옥을 가거나 광고 해약 사태를 맞는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방송 문화 발전과 언론 문화 창달에 기여하며 방송사에 남는 역사적 방송사가 되었다.
동아방송은 서울 한복판 광화문 사거리 동아일보사 사옥에서 출발했다. 신문사와 같이 가는 최초의 민영 동아방송은 별도의 법인체가 아닌 동아일보 신문사의 하나의 국으로 출발했다. 동아일보사의 창립 이념이 그렇듯이 어느 특정인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 창달과 장학 사업, 체육 발전 등 사회 발전을 위해 환원한다는 것이었다. 상업 방송이기는 하되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송은 아니라고 밝혔다. 건전공평명랑을 지향하며 방송의 품격을 높이고, 알기 쉽고 올바른 말의 보급과 사회 순화에 힘쓰며 자유와 정의의 편에 서며, 어떠한 독재에도 반대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방송이 진행되었다. 우리 나라 방송 최초로 모든 프로그램은 획기적으로 프로듀서 시스템을 채택하였으며, 프로듀서의 책임하에 독립적인 제작이 이루어지는 방송 시스템의 기초를 놓았다.
동아방송은 개국당시 평일 14시간, 휴일 16시간 반의 방송을 했지만 한 달 후부터는 심야를 제외한 19시간 종일 방송체제로 들어갔다. 동아방송이 비록 상업 방송이기는 했지만 전파의 공공성과 방송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동아일보의 이미지를 지키며 언론의 정도를 걸어갔다. 뉴스를 개국 방송의 시작프로로 할만큼 뉴스에 큰 비중을 두었고 신문사와 함께 속보성과 현장감을 살린 빠르고 다양한 뉴스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
개국시부터 14차례나 뉴스를 했고 방송 비율도 10%나 되었다. 신문을 귀로 듣는다는 생각으로 라디오 조간이나 라디오 석간이 마련되었고 최재기자가 직접 출연하는 뉴스쇼도 이때 선보였다. 1969년에 등장한 뉴스쇼는 30분간에 걸쳐 뉴스를 쇼처럼 진행한 것으로 신선감을 주었고 뉴스도 재밌게 들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편 스테이션 브레이크를 활용한 캠페인 방송도 신선한 아이디어로 돋보였다.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캠페인 송 "상쾌한 아침이다 걸어서 가자. 걸으면 건강하다, 학교에도 일터에도 걸어서 가자."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기분으로 상쾌하게 걸었다.
미도파 백화점 1층에 만들었던 스튜디오는 청취자와 함께한다는 동아방송의 이념을 구현한 좋은 례이다. 시사칼럼 앵무새 ! 날마다 방송되던 이 5분간의 방송이 세상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수위 높게 외쳐대던 앵무새의 말소리가 전파를 타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지만 한편에서는 그 말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시대에 나라 일을 하시던 분들이 주로 그런 생각을 가졌다.
비상계엄이 있던 다음날인 6월 4일. 기관원들이 동아방송에 들이 닥쳤다. 담당 PD를 비롯한 제작진이 모두 체포되어, 6월 15일 반공법과 특정범죄 처벌에 관한 임시특별법등의 위반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 되고 그로부터 5년 6개월이 지난 1969년 12월 서울 고등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검찰의 항소 포기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로부터 10여년 후 동아방송은 다시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폐쇄되어 KBS라디오로 강제 통합 당하면서 많은 사람들 가슴에 여운을 남긴 채 문을 닫게 되었다.
[ⓒ 스마트 시니어뉴스 욜드(YOLD).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많이 본 기사
오늘의 이슈
- ‘휴온스 챔피언십’ ‘PBA 국내 대표 각각 이희진 김봉철 김성민2 3:0 승리 ‘시즌 챔피언’ 모리 이승진은 승부치기 승 LPBA 32강서는 김가영 스롱 나란히 16강강자’ 조재호 강동궁 최성원, 나란히 64강 진출
- 더블트리 바이 힐튼 서울 판교 데메테르(Demeter), 중식 테마 프로모션 ‘Wok This Way(지지고 볶는 차이나)’ 선봬
-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미쉐린 3스타 ‘효테이’ 초청 미식 행사로 정통 가이세키의 진수 선보여
- LPBA ‘20대 팀리거’ 조예은 용현지 N.응우옌 PQ라운드 진출
- Health / 검사를 통한 초기치료가 효과적 전립선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