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iversary / 1980년 7월 24일, '수중 고고학'의 시초 신안해저유물 470점 발굴

Anniversary / 김미루 칼럼니스트 / 2026-07-24 06:03:39

[욜드(YOLD)=김미루 칼럼니스트] 1976년 어느 날 전남 신안군 지도면 도덕도. 트롤 어선으로 고기를 잡던 어부의 그물에 흙과 굴 껍데기가 다닥다닥 붙은 항아리가 걸려 나오면서부터 시작된 신안해저유물의 발굴은 당시 항아리를 어부가 집에 가져가 잘 씻어 놓고 보니 청자였던 것이다. 어부는 청자를 군청에 신고했고, 이후 신안 앞바다에는 보물선이 가라앉아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누구나 전설 같은 보물섬을 꿈에 그린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심해의 바다에서 보물을 건졌다면 아마 그것은 로또 이상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름 하여 신안해저유물은 1975년 5월 전남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의 그물에 청자매병 등 6점의 유물이 건져 올려 진 것을 계기로 하여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인양된 선체는 72편으로 그 당시의 선체 원형을 복원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발굴된 유물은 총 22,007점에 이르는데, 이 유물은 7개의 격벽(隔壁)으로 구획된 짐칸 속에서 인양되었다. 2만여 점의 출토 유물은 당시 해상운송의 규모를 말해 주는 것은 물론, 경제적인 교류의 증거를 제시해 준다. 1980년 7월 24일엔 무려 470점이 한꺼번에 발굴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발굴 유물은 중국 송. 원대의 제품이 주류를 이루지만, 고려자기 등 고려 유물이 몇 점 확인 되었고, 나막신, 칼코등 일본유물도 20여점 있어서 당시 동북아 삼국의 교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 신안해저문화재는 중국원대 14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신안 침몰선은 중국 선박으로서 일본을 향해 가려던 무역선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선박이 고려를 경유하여 일본으로 항해를 하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고려자기와 중세의 항로로 이를 추론할 뿐이다. 침몰 연대는 도자기의 양식, 동전, 목패 등을 바탕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신안해저발굴은 원대의 사회상, 경제상, 조선술, 국제 교역사, 공예 미술의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첫 장을 열게 한 해양 발굴로서 한국 발굴사에 큰 획을 이루었다. 

1976년 어느 날 전남 신안군 지도면 도덕도. 트롤 어선으로 고기를 잡던 어부의 그물에 흙과 굴 껍데기가 다닥다닥 붙은 항아리가 걸려 나오면서부터 시작된 신안해저유물의 발굴은 당시 항아리를 어부가 집에 가져가 잘 씻어 놓고 보니 청자였던 것이다. 어부는 청자를 군청에 신고했고, 이후 신안 앞바다에는 보물선이 가라앉아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재빠른 도굴꾼들은 바다에서 원나라와 고려시대의 명품 도자기들을 건져 올려 일본에 몰래 팔았다. 9월에야 낌새를 챈 경찰이 도굴꾼들을 붙잡아 보니 그들의 창고에서 국보급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화재관리국은 그해 10월 11일에 ‘신안해저유물 발굴조사단’을 구성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했다.

유물 발굴에는 해군 제5150부대 해난구조대 잠수대원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당시로선 최신 장비를 갖춘 해군도 유물의 위치를 잘 찾지 못했다. 결국 해군은 목포경찰에 붙잡힌 도굴꾼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후 신안 앞바다는 마치 끝없이 보물을 토해 내는 요술항아리 같았다. 국보급 고려청자, 송나라와 원나라의 청자와 백자, 흑유(黑釉·검은 빛깔의 도자기), 청동 촛대, 향로, 거울, 벼루, 맷돌, 동전 등이 그득한 나무상자가 고스란히 올라왔다. 1984년 9월까지 11차례 인양에서 나온 유물은 모두 2만2007점. 이 중 청자 1만2359점을 비롯해 도자기만 해도 무려 2만661점이었다.

신안해저유물 발굴은 땅만 파헤치던 우리나라 고고학계에 ‘수중 고고학’의 진가를 깨우쳐 준 출발점이었다. ‘신안선’의 선체와 유물이 650년이 넘도록 훼손되지 않았던 것은 갯벌 속에 파묻혀 진공상태가 유지됐기 때문이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동북아 3개국 무역로로 활용됐던 서남해는 이후 ‘보물선의 무덤’으로 주목을 받았다. 신안해저 유물선은 14세기 동아시아 세계의 한 단면을 증언하는 거대한 타임캡슐로 평가받는다. 이 배는 중국 남부의 광저우(廣州), 항저우(杭州), 닝보 등의 국제 무역항에서 출발해 서쪽으로는 동남아, 인도,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동쪽으로는 고려와 일본까지 이어졌던 ‘해상 실크로드’가 실재했음을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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