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일상과 생각 / 688쪽의 벽돌책에서 아들의 여름을 읽다
- 박정하 일상과생각 / 박정하 칼럼니스트 / 2026-09-02 08: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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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워싱, 축구를 집어삼킨 자본과 국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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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FC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축하하는 선수단 카퍼레이드) |
하지만 올여름 내내 이 책을 붙들고 번역했을 아들을 생각하며, ‘그래, 어디 한번 읽어보자.’ 그렇게 책을 펼쳤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낼 자신은 없어, 목차를 훑어보다 관심이 가는 몇몇 장을 골라 읽었다. 말하자면 정독보다는 발췌독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뜻밖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2011년 5월 말, 30여 일간 이어진 남프랑스 백패킹의 끝자락에 바르셀로나에 들렀을 때였다. 그날은 FC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축하하는 선수단 카퍼레이드가 열리는 날이었다. 인파에 떠밀려 맨 앞줄에 서 있던 내 눈앞으로 오픈 톱 버스가 지나갔다. 긴 머리를 휘날리던 스물세 살의 리오넬 메시가 보였다. 나는 옆의 군중들과 함께 까치발을 하며 손을 내밀었고 그의 손이 내 손에 닿았다. 당시의 나는 축구에 그리 열광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 짧은 만남을 여행길에서 얻은 작은 행운쯤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그 기억은 오랫동안 마음속 서랍 한편에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펼치자 바로 그 메시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우승 후, 카타르의 군주(에미르)가 아르헨티나의 주장 메시에게 자국의 전통 의상인 비슈트를 입혀주는 장면이었다. 문득 그때 그 바르셀로나에서 내 손끝을 스쳐 지나갔던 스물세 살 청년의 모습이 겹쳐졌다. 한때는 한 청년의 손끝이었던 메시가 이제는 한 국가의 이미지까지 걸친 상징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서문에서 명문 클럽 아스널의 전설적인 감독이었던 아르센 벵거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축구는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든 이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이야기였다. 공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고, 골이 쉽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실력과 우연 사이에서도 절묘한 균형을 갖는 스포츠라는 설명이었다.
그렇다. 축구의 아름다움은 어쩌면 그 단순함에 있었을 것이다. 공 하나와 사람 몇 명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 단순했던 공 하나를 둘러싸고 얼마나 복잡한 돈과 권력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신흥 재벌인 올리가르히가 축구판에 들어오고, 이어 중동의 거대한 오일머니가 유럽의 명문 클럽들을 사들이면서 축구의 주인은 점점 달라졌다. 축구 클럽이 이제는 단순한 스포츠 구단을 넘어 거대한 자본과 국가의 이해관계가 만나는 공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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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부다비의 맨체스터 시티, 카타르의 파리 생제르맹, 사우디아라비아의 뉴캐슬. |
나는 축구 선수들의 발끝보다 ‘돈과 권력의 궤적’을 따라 이 책을 읽었다. 돈은 어디에서 왔는가. 왜 축구로 흘러들어왔는가. 국가는 왜 축구를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축구는 무엇을 잃어가는가. 이 질문들을 따라가니 688쪽의 축구책이 어느새 현대 자본주의와 국제정치를 들여다보는 인문·사회학적 보고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내 마음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돈의 액수도, 선수들의 몸값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역 공동체의 기억’이었다. 축구 클럽은 원래 그 동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경기장으로 향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처음 경기장을 찾고, 세월이 흘러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다시 아들의 손을 잡고 같은 곳을 찾는 곳. 그곳에는 승리와 패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있었고, 세대의 기억이 있었고, 한 지역의 정체성이 있었다. 그런데 거대한 자본이 들어오면서 그 소박한 공간은 어느새 세계적인 상품이 되어간다. 지역과 이웃의 추억이 글로벌 상품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축구보다 오히려 우리 주변의 다른 풍경들을 떠올렸다. 오래된 골목이 사라지고, 동네 서점이 문을 닫고, 한 세대가 함께 드나들던 식당과 극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더 크고 더 세련된 건물이 들어서는 모습. 사람들은 그것을 발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발전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이 책이 내게 던진 질문은 결국 그것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마저 어디까지 돈에 넘겨주어야 하는가.
스포츠워싱이라는 말도 그래서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스포츠의 화려함은 때로 그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세계적인 스타, 거대한 경기장, 수많은 관중과 열광적인 함성. 그 화려함 뒤에서 자본은 움직이고, 국가는 이미지를 만들며, 때로는 정치적 목적을 얻는다.

축구가 얼마나 강력한 문화적 힘을 가진 것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그 힘이 국가의 이미지와 결합할 때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책을 읽다 문득 얼마 전 우리나라 축구와 관련된 한 장면도 떠올랐다. 국회 청문회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축구 관계자들을 불러놓은 자리에서 한 국회의원이 경기 결과를 두고 "왜 졌어요? 왜 졌어요?"라고 거듭 묻던 모습이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우리는 늘 경기장 안의 승패만을 바라보며 "왜 졌는가"를 묻는다. 하지만 이 책은 내게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졌다.
“누가 이 축구를 소유하고 있는가.”
아마도 이 질문이야말로 내가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수록 자꾸 아들 생각이 났다. 이 책은 축구 용어만 옮긴다고 되는 책이 아니다. 국제정치가 있고, 자본의 흐름이 있고, 국가와 기업의 관계가 있고,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얽혀 있다. 원서의 묵직한 취재와 고발을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서는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도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들이 올여름 내내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고생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책을 직접 읽어보니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아, 아들이 이 두꺼운 책과 씨름하며 보낸 여름이 이 문장들 속에 들어 있구나. 688쪽이라는 숫자가 이제는 단순한 페이지 수로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한여름 동안 흘린 땀과 고민이 차곡차곡 쌓인 688쪽이었다.
박태인과 함께 번역한 정효웅 선생, 그리고 감수를 맡아주신 한준희 위원께도 감사와 찬사를 보내고 싶다. 특히 아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인 정효웅 님과 함께 이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는 사실이 아버지인 나에게는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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