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life / 마트에는 없고, 전통시장에만 있다. '깎음의 미학'

Midlife Culture / 최장용 / 2024-11-22 09:54:05
- 깎음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것이 '에누리'와 '덤'

[스마트시니어뉴스=조현철 기자]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 세계적으로 지정될 정도로 소비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깎아주세요’는 ‘더 주세요’ 보다 친환경적인 요청이다. 딱 콩나물 한 주먹 만큼의 덤이나 깎음이 남아있는 상거래가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산행하는 등산길 어귀에 가면 가파른 오르막 전에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다. 붉은 고무다라에 담긴 상추, 콩, 산나물들과 재래시장의 모체인 것 같은 할머니들의 삼삼오오 상거래 터이다. 이곳에 어울리는 단어는 덤, 인심, 그리고 흥정과 깎음. 그러나 그런 풍경은 이제 관광지 앞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추억의 영화 속 장면처럼 아련하다.

가게에서 일제히 이름을 바꾼 ‘마트’에서는 바늘 저울이 아닌 디지털 저울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비닐에 담긴 상품의 그람수를 단가와 곱해서 바코드 가격표로 출력한다. 계산대에서도 바코드 리더기로 띡띡 찍으면 정가가 나온다. 받은 돈을 입력하면 거스름돈도 계산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디지털 계산기로 뜬다.

여기서는 덤도 흥정도 심지어 말도 필요 없다. 지갑만 있으면 한 마디도 말할 필요 없이 물건을 살 수 있다. 어쩌면 글씨를 몰라도 포장지를 보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바코드를 읽을 기계와 돈 통이 필요할 뿐이다. 소비자는 싸게 사고 싶어 하고 공급자는 비싸게 팔고 싶어 하는 것은 상거래 심리 불변의 기본이다. 이 밀고 당기는 심리전의 막바지 여지를 없앤 정찰제. 벌써 오래전에 시행된 생필품 가격 정찰제는 온갖 기계의 발달로 점점 더 말도, 정도 필요 없는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어.’란 흘러간 노래도 이제 인정머리 없는 정찰제 앞에서 부를 수도 없다.

소비자의 ‘깎아주세요.’라는 요청에 대한 공급자의 반응은 ‘더 드립니다’라는 판매술로 바뀌어 ‘1+1’이 특별가로 횡행하고 있는 요즘, 소비자 편은 과소비, 과물질 속에서 살고 있다. 소비자는 덜 사고 싶은 거지 거저 받고 싶은 것이 아니다.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이 세계적으로 지정될 정도로 소비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깎아주세요’는 ‘더 주세요’ 보다 친환경적인 요청이다.

혹자는 정직과 흥정을 견줄 지도 모른다. 정가대로 돈 내면 되지 무슨 요행을 바라냐고 말이다. 그런 사람은 사랑도 그런 식으로 할지 모른다. 어쩌면 약속도 안 한 채로 상대가 집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왜 예정에 없는 짓을 하냐고 화를 낼 지도 모르고, 헤어질 때 그동안 내 데이트 비용과 선물 값도 계산기를 두드릴지 모른다. 아니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넘치는 커뮤니케이션을 힘들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물론 양심도 없이 팍팍 깎아 판매자를 당황하게 하는 소비자는 준 선물 도로 달라는 사람 축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깎음은 어느 정도의 애원과 선심이 애교를 타고 밀고 당기며 스텝을 밟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준다. 궁색한 사람은 깎음에서 알뜰한 살림을 해나갈 것이고, 그래도 마진이 남는 장사꾼은 좀 좋은 일을 했다는 흐뭇함도 느끼며 재고처리에 힘들일 필요도 적어질지 모른다. 잘 한 흥정은 특별히 소비자에게 좋은 기분을 선사할 것이다. 혹시 깎음의 여지가 있을 때 가격 거품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적절한 흥정이 필요하다. 미소 지을 정도의 깎음, 그 깎음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

딱 콩나물 한 주먹 만큼의 덤이나 깎음이 남아있는 상거래가 좋겠다. 흥정이 가능할 때는 물건을 좀 덜면 되지만 정찰제 상황에서는 돈이 없으면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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