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life / 빨간 기다림, 우체통

Midlife Culture / 최장용 / 2025-03-11 10:10:58
▲ photo-pixabay

[Smart Senior News=최장용 기자] 영화 ‘시월애’에서 이정재와 전지현 다음으로 중요했던 배역은 빨간 우체통. 석모도의 이정재 집 ‘Il Mare(일 마레)’가 구조적 특이성으로 단절을 강조했다면, 2년간의 사랑을 이어준 빨간 우체통은 그야말로 ‘매개’ 그 자체.

우체통은 구텐베르그 시대의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을 가능케 한 편지의 여행길 숙소이다. 항공우편에 쓰는 ‘VIA’도 ‘~를 경유로, 거쳐’라는 뜻이므로. 밤 새워 쓴 편지는 우체통에서 하룻밤을 자고 우체국으로 간 후, 먼 여정을 거쳐 우체부 아저씨 가방을 거쳐 발신인이 쓴 수신지에 도착한다. 도착지 역시 받는 이의 개인 우체통. 행여 눈물로 쓴 풋사랑 편지를 우체통 입에 집어넣고는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려 넣었던 편지를 되찾고 싶었던 마음도 한 번쯤은 품어 보았을 어리고 젊던 시절, 우체통은 기다림과 기대감의 매개체였다.

우체통은 보내는 우체통과 받는 우체통으로 나눌 수 있다. 보내는 우체통은 나라별로 색깔이 다르다. 우리나라와 일본, 캐나다, 영국은 빨강, 미국은 파랑, 스페인은 일반 우편은 노랑, 빠른우편은 빨강, 중국은 초록 원통형,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는 노랑, 러시아는 벽에 거는 파랑, 나라마다 모양과 색깔이 가지각색이다. 그 중 가장 정감 가는 우체통은 ‘나에게 줄 것(편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쓰여 있는 오스트리아의 노란 우체통. (지면이 허락한다면 사진을 넣어도 좋을 듯 합니다. 출처 네이버)

우리나라는 받는 우체통을 따로 제작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예전에는 철제대문에 구멍 뚫어 금속으로 된 우체통이 달려 있었고, 요즘은 현관 벽면에 호수와 함께 주루룩 박혀있는 철제 우편함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담도 없고 잔디가 널찍한 정원 딸린 외국 주택이나 전원주택에는 낮은 울타리 앞에 예쁜 우편함이 사붓이 서 있다. 그러나 그런 모양의 우체통은 편지를 보내는 기능도 함께 하는 것이니 카페 앞에 설치한 단순한 장식용과는 커뮤니케이션상의 상당한 차이가 있다. 

▲ photo-pixabay

바야흐로 정보통신시대, 인편으로 주고받던 편지는 우체통을 거쳐 전자우편(이메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보낸 편지를 다시 읽어 보고, 수신 확인에 발송 취소까지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 편지를 품지 못한 우체통은 빨간색을 햇빛에 바랜 채, 헐거운 우체부 아저씨의 가방처럼 쓸쓸하다. 우리 IT강국에서 이메일 사용 이후, 개인 우편함 아구는 언제나 고지서, 통지서로 가득 차고 육필의 편지는 거의 드물다. 그나마 이제는 웬만한 내용은 이메일도 귀찮아 문자로 전송하는 시대라 올 연말연시도 폭주하는 문자 인사로 텅 빈 우체통. 우리는 시간을 ‘나노’로 분해해 살고 있는 것 같이 기다리지 못 한다.

우체통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는 우체부이다. 프랑스 노동당 대표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전직 우체부였다. 그는 우체부의 역할이 오지일수록 지역 사회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고 주장한다. 이주홍 동화 <우체통>에는 일본에 계신 아버지께 보내 드리고 싶어 우체통에 개떡을 넣는 숙희가 나온다. 결국 개떡은 이름 모를 우체부에 의해 숙희네로 돌아오지만, 영화 <일 포스티노>의 우체부처럼 낭만적인 우체부가 찾아오는 우체통이라면 우리 집 앞에 두고 싶다.

아직도 동네 어귀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을 스칠 때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내 본다. 또한 인사하듯 몸을 구부려 내 집 우체통 문을 열 때, 스릴러 영화처럼 뱀을 기대하는 사람이 없는 한 우체통은 거리와 시간을 거쳐 온 선물을 선사할 것이다.

[ⓒ 스마트 시니어뉴스 욜드(YOLD).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