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Interview / 나영아 교수의 Double-cropping Life, “하루의 예술에서 평생의 예술로 갈아 탔어요”
- Interview / 조용수 기자 / 2024-08-31 12:18:07
- 조리과 교수 정년퇴임하는 해 화가 신고식
나무에는 희고 화려한 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나무를 중심으로 여인 셋이 배치돼 있다. 두 명은 가야금을 연주하고 한 명은 꽃향기를 맡고 있다. 나영아 작가의 ‘마이 하우스’(2004)에는 행운목이 등장한다. 환경이 맞지 않으면 좀처럼 꽃을 피우지 않기에 실제로 꽃을 보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작가가 집에서 키우는 행운목은 자주 꽃망울을 틔워 올린다. 단조롭기 그지없는 수형이지만 꽃송이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나작가의 행운목꽃은 1989년 2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35년동안 피워왔는데, 1년 중 한번씩은 꼭 피었다고 하며, 주로 겨울에 피거나, 신년 1~2월경에 피운다고 한다.
“행운목은 해 질 무렵 꽃을 피워 올렸다가 새벽녘 여명이 터오면 저물어요. 처음에는 행운목이 백합과라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향기를 맡아 보고 바로 이해가 됐어요. 꽃 중에 향기가 가장 좋은 게 백합인데 똑같은 향기가 나더라고요.”
꽃의 화려한 외향에 한 번 반하고 향기에 두 번 반하는 꽃이 행운목이다. 그의 그림에는 모두 3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맨 왼쪽에서 가야금에 집중하는 여인은 본인이다. 작가의 가야금 실력은 공연까지 열 정도로 수준급이다. 그렇다면 서서 꽃향기를 맡는 사람은 누굴까? 행운목 향기를 사랑하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 본인이 아닐까.
그렇다면 오른쪽에서 갸야금을 무릎 위에 올려 두고 어딘가를 쳐다보는 사람은 누굴까? 자신의 또 다른 자아에 관심을 기울이는 본인으로 짐작된다. 하나의 그림에 3개의 자아를 배치한 것은 그만큼 작가가 여러 개의 역할을 소화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 작가는 화가로 활동 중이지만 올해 2월 을지대학교 식품산업외식학과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했다. 재임 동안 교수로서 학문에 토대를 둔 새로운 조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선진화된 기술교육을 통해 후학을 양성했으며 조리학회 활동에 있어 학회 학술지 편집 책임자의 위치에서 조리·외식산업의 발전을 도모한 공로가 크다.
또한, 학회 최초 여성회장으로 학회 회원들의 희망적인 가치 향상이 가능하도록 기여했다.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고 흩어져 있는 목소리를 모아 큰 틀에서 정리된 논의를 펼쳐나가는 효율성으로 학회를 훌륭하게 이끈 장본인이다.
다시 ‘마이 히우스’로 돌아가 보자. 하늘에 둥근달을 그린 것은 행운목이 밤에 꽃을 피운다는 뜻일 테다. 행운목에 꽃이 피면 그 집에 행운이 찾아든다고 한다. 네잎클로버처럼 작은 풀도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하는데 커다란 행운목에 무수한 꽃이 달렸으니 그 집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행운이 찾아들 게 틀림없다. 어쩌면 행운은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평생의 숙원인 그림을 마음껏 그리게 됐으니 말이다.
“교직은 제 천직입니다. 그러니 40년 가까이 강단에 서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었겠죠. 그러면서 결혼하고 자식 낳고 학위 따고 애들을 키웠어요. 반은 사명감, 반은 책임감으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오롯이 나 혼자만을 위한 일이에요. 투철한 사명감도 무거운 책임감도 없죠.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던 작가는 미대에 진학해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반대했다. 맏딸이니까 사범대에 가야 한다고. 당시만 해도 부모님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는 아버지 말씀을 받들어 한양대 사범대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했다.
“인생에서 예술 아닌 게 없었어요. 가야금도 골프도 인간관계도 알고 보면 다 예술이죠. 조리역시 예술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셰프가 만들었다고 해도 음식의 유통기한은 고작해야 하루입니다. 예술 가운데 가장 생명이 짧다고 할 수 있죠. 설탕공예 정도는 조금 생명이 길지만 그것도 시간의 힘을 거스르지 못해요. 하지만 미술 작품은 그 수명이 몇백 년을 갑니다.”
“학교 다닐 때는 도록 외에는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어요. 그런데 미국 LA로 해외연수를 갔다가 게티센터에 들를 기회가 있었어요. 그곳에서 처음 고흐·세잔느·마네·모네 같은 유명 화가의 작품을 실물로 접했는데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 대학시절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있을 당시, 로마에 갔을 때도 당연히 바티칸시티의 시스티나성당에 들렀죠.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를 눈으로 보는데 가슴이 웅장해지더라고요. 13m가 넘는 높은 곳에 40m나 그려진 천장화였어요. 천재 화가가 20년을 공들인 노력의 결실이 그곳에 버티고 있었어요. 사진으로 본 것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훗날 다시 한 번 그곳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 사이 깔끔하게 복원이 되어 있지 뭐예요. 세월의 두께를 걷어 낸 그림이 전 이상하게 낯설었어요.”
“남편은 저의 든든한 응원군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믿고 지지해 주죠. 요즘은 맞벌이가 기본이고 육아와 가사도 반반씩 부담한다지만 당시만 해도 여자가 직장을 다닌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어요. 물론 살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었기에 몸이 고달프긴 했지만요. 그래도 일하는 게 좋아 병가 한 번 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죠.”
“AI가 못하는 게 없는 시대라지만 세상은 여전히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합니다. 요리가 그렇고 그림이 그렇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 정원을 가꾸는 일 모두 사람 손을 필요로 하죠. 미켈란젤로는 팔에 부목을 대고 천장화를 그렸어요.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탄생한 그림이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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