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 박정하의 일상과 생각,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딸들 "벽을 향해 날아 다시 하늘의 새가 된 최가은"
- Column / 박정하 칼럼니스트 / 2026-02-14 16:52:02
- 최가온의 금빛 착지와 지켜보던 클로이 김의 미소
이번 경기가 더욱 깊은 울림을 준 이유는 클로이 김이 그 무대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평창의 전설이자 많은 어린 선수들의 북극성이었던 그를, 최가온은 17세 3개월이라는 기록으로 넘어섰다. 그러나 우상을 넘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가 열어둔 하늘을 더 넓히는 일인지도 모른다. 클로이 김의 시대가 최가온이라는 새로운 계절로 이어지는 순간, 그 밤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졌다. 3연패를 놓친 클로이 김이 먼저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축하를 건네는 모습. 승자는 금메달을 얻었고, 패자는 품격을 남겼다. 그 미소 안에서 하프파이프 특유의 자유와 존중의 정신이 조용히 빛났다.
하프파이프의 기원은 거창하지 않다. 1970년대 미국의 보더들이 물 빠진 수영장에서 즐기던 '놀이'가 눈 위로 옮겨와 올림픽의 꽃이 되었다. 골프 역시 마찬가지다. 스코틀랜드 목동들이 지팡이로 돌멩이를 쳐 토끼굴에 넣던 심심풀이가 전 세계인의 스포츠가 되었다. 누군가의 장난 같은 도전 속에는 늘 ‘조금 더 멀리 가보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 숨어 있다. 그 마음이 세월을 건너 전설이 된다. 하프파이프는 벽처럼 가파른 경사면을 타고 올라가야만 더 높이 날 수 있는 묘한 경기다. 밀려 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속도를 붙이고, 추락할 것을 알면서도 몸을 던져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닮았다. 오르막은 늘 가파르고,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은 불안하다. 무엇 하나 붙잡을 수 없는 그 찰나에 우리는 오직 자신만을 믿어야 하며, 착지의 책임 또한 온전히 자기 몫이다. 최가온은 부상이라는 균열 위에서도 날기를 선택함으로써 그 질문에 답했다.
"나를 뛰어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은 남을 이기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어제의 자신을 넘어 오늘의 내가 되겠다는 고백이다. 거창한 승리보다 단단해진 한 번의 착지가 우리 삶에는 더 필요할지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파이프를 산다. 때로는 미끄러지고 방향을 잃지만, 다시 속도를 내어 벽을 향해 오르는 순간 이미 우리는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된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진 뒤에도 다시 오를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더 높이, 더 멀리 난다. 눈 위에 남은 선 하나처럼, 마음속에도 지워지지 않을 궤적 하나가 그어진 새벽이었다.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2월 13일 오전 3시 30분. 도시의 소음이 잠든 새벽, 나는 이탈리아 알프스 자락 리비뇨의 설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파이프 위, 차가운 눈과 대비되는 한 소녀의 뜨거운 숨결이 TV 화면을 가득 채웠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그것은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한 인간이 한계와 마주 서는 시간이었다. 1차 시기의 아찔한 부상, 그리고 2차 시기 전광판에 뜬 ‘DNS(출전하지 않음)’라는 세 글자. 스포츠 중계를 오래 본 이들은 안다. 그 건조한 약자가 때로 얼마나 많은 끝을 의미하는지. 다행히 최가온은 다시 출발선에 섰다. 그러나 2차 시기마저 실수하며 순위는 12명 중 11위. 금메달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였다. 마음이 먼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마지막 3차 시기에서 그는 다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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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공에 머무는 단 몇 초의 시간, 최가은은 부상이 아니라 비상을 선택했다. (사진 올댓스포츠) |
절뚝이는 걸음 끝에 시작된 비상. 파이프를 타고 올라가는 속도와 허공에 머무는 찰나의 정적, 그리고 이어진 다섯 번의 공중 연기. 중력을 거스른 부드러운 곡선 끝에 흠잡을 데 없는 착지가 남았다.
"90.25점."
숫자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넘어졌다는 사실보다 다시 날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문장이 길게 적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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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을 넘어서는 가장 다정한 방법, 클로이 김 & 최가온 선수(사진 JTBC) 클로이 김 (사진 올댓스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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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에서 태어난 비상. 최가은 금메달을 목에 걸다 (사진 올댓스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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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뛰어넘는 선수가 된다는 것. 시싱대 위에 함께한 클로이 김 & 최가온 선수(사진 JT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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