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일상과 생각 / 정답의 숲을 지나, 나만의 오답을 쓰는 법

Column / 박정하 칼럼니스트 / 2026-06-03 18:29:52
—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덮으며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소설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에 패배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이야기의 완성도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였음을.이 책을 쓴 스즈키 유이는 이제 스무 살을 조금 넘긴 작가다. 이 작품으로 2025년 일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그런데도 그는 ‘지혜와 실천 사이의 간극’을 마치 오래 살아본 사람처럼 다룬다. 나는 그 점에서 기분 좋은 패배감을 느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 남는 말이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섞이게 한다’는 말. 우리는 사랑을 흔히 혼란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아마도 익숙한 일상이 흐트러지고, 내가 나였던 방식이 무너지는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나를 잃어버리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말하는 사랑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무너짐이 아니라, 스며듦에 가깝다. 서로 다른 두 색이 만나 완전히 새로운 색이 되듯, 사랑은 나를 지우는 대신 나의 경계를 넓힌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나로 남아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나가 된다.

 

이 소설은 “인생의 모든 답을 괴테가 이미 말했다"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말은 이야기 내내 반복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주인공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말을 끌어와 자신을 설득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하나다. 정답을 아는 것과, 그 정답을 살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사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말로 삶을 이해하려 한다. 그 말이 정확하고 아름다울수록, 그것이 곧 나의 것이 된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괴테든 어떤 다른 성인의 말도 나를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말은 방향을 가리킬 뿐, 그 방향으로 걷는 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되묻는다. ‘그 말이 맞는다면, 당신은 왜 아직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고.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독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시험하기 위해 읽는 일. 좋은 말을 발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삶으로 가져와 부딪혀 보는 것.

문득 괴테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이해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이해할 뿐이다.’
(Man lebt nicht, wie man versteht, sondern man versteht nur, wie man lebt.)

나는 이 말을 좋아하면서도, 그 앞에 서면 늘 겸허해진다. 그는 평생 ‘인식’과 ‘실천’의 관계를 고민했고, 이 말은 그 사유의 정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삶으로 가져와 그대로 살아보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마도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은 그 둘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야말로, 아직 삶이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나니 묘한 허무가 남는다. 하지만 그것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비워짐에 가깝다. 이미 누군가는 정답을 말해두었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방식으로 틀릴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나를 가볍게 만든다.

정답의 숲을 지나, 이제 나는 나만의 오답을 써 내려가려 한다.

말이 아니라 걸음으로,
이해가 아니라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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