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is / 1980년 11월 30일 언론 통폐합> 탑튠 쇼, 쇼쇼쇼, 3시의 다이얼 등등 이제는 기억 저편의 방송들...

Midlife Culture / 신성식 기자 / 2024-11-30 19:53:11
- 신문사를 ‘언론계 구조개선’이라는 그럴듯한 명목 아래 강제 통폐합시켜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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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니어뉴스=신성식 기자] 동양방송-1964년 서울에서 개국되었던 민영방송. 중앙일보사(中央日報社)가 겸영(兼營)한 민간상업방송의 하나로 동양방송 산하에는 동양라디오·동양텔레비전·동양FM 등이 있었다. 통상 TBC(TongYang Broadcasting Company)로 불렸다. 전반적인 방송기본방침으로 ‘밝고 건강하고 감동적인 프로그램 제작, 빠르고 정확한 보도’를 내세웠다. 동아방송-1963년 서울에서 개국되었던 민영방송. 동아일보사가 겸영(兼營)한 민간상업방송의 하나로서 통상 DBS(Dong A Broadcasting System)라 한다. 호출부호 HLKJ, 주파수 1230KHz, 출력 10㎾.

밤을 잊은 그대에게
‘기억하시죠? 이 시그널을. 오래 기억해 주세요. 오늘 끝 방송입니다. 안녕하세요. TBC 동양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저, 황인용입니다.’

 

1980년 11월 30일 늦은 11시, 이러한 오프닝 멘트로 문을 연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울음을 삼키는 진행자 탓에 중간 중간 끊기다 동양방송 호출 번호를 알리는 것을 끝으로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울먹였던 황인용 아나운서는 이 방송을 끝으로 한동안 대중매체에서 볼 수가 없었다. 구구한 억측이 난무했다.

덧붙여 하나 더, 가수 이은하도 비슷한 이유로 상당 기간 방송 출연을 하지 못했다.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TV 마지막 프로에서 펑펑 눈물을 터뜨린 탓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각설하고 MBC의 ‘별이 빛나는 밤에’, DBS의 ‘0시의 다이얼’과 함께 갖가지 사연과 음악, 그리고 DJ의 그윽한 음색으로 하여 많은 이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KBS로 옮겨가 여전히 밤을 지키고 있지만, 그때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겐 그다지 살갑게 와 닿지 않는 프로가 된 것 같다. 억측인가?


하여튼 당시 울음을 참아가며 원고를 읽던 그이 목소리에 흐느껴 울다 기어이는 목 놓아 울었던 탓에, 퉁퉁 부은 얼굴로 다음날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난다. 가서 보니, 같은 모습의 동무 몇몇이 보였다. 사실 ○인지 된장인지 제대로 구별도 못하던 나이였다.

1980년 11월, 땅은 아직 얼어붙기 전인데…
당시 신군부 세력은 민영방송사인 동양방송과 동아방송 등의 방송사와 신아일보, 서울경제와 내외 경제 등의 신문사를 ‘언론계 구조개선’이라는 그럴듯한 명목 아래 강제 통폐합시켜 버렸다. 그 과정을 여기에서 시시콜콜 거론할 수는 없는 일이고……. 아무튼 온갖 억측을 뒤로 하고 일의 결말은 칼자루 쥔 사람의 뜻대로 각본대로 이루어졌다. 당시 어느 누가 감히 입 뻥끗 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지. 하지만, 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달도 차면 기우나니…….

1963년 시작한 DBS 동아방송은 KBS로 통합되어 제4라디오가 되었다가 라디오 서울로 개칭, 서울방송 곧 SBS 라디오 개국으로 완전 폐지되었고, 동양방송 TBS TV는 KBS 2TV로 TBS 라디오는 KBS 제3방송으로 TBS FM은 KBS 제2FM으로 통합되었다. 1954년 개국한 최초의 종교방송 CBS는 이름은 유지하되 보도 기능과 광고 방송을 상실하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하다 1987년 그 권한을 되찾아 오늘에 이른다.

 

짧지만 화려했던 동양방송
TBC 동양방송은 삼성이 소유한 유일한 민영방송사로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자 자사의 모든 프로를 총 동원하여 母 그룹을 비호하는 방송을 연일 내보낸 탓에 많은 이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예능과 오락 부분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인이 된 후라이 보이 곽규석이 진행했던 ‘쇼쇼쇼’는 춤과 노래, 그리고 코미디가 결합된 국내 최초의 TV 버라이어티 쇼였다. 'fly boy'란 뜻으로 지은 고인의 예명이 본디 가진 의미보다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다.’는 뜻의 속칭 ‘후라이 친다.’라는 뜻으로 와전되기도……. 이 프로는 몇 해 전, 영화 ‘쇼쇼쇼’를 통해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그밖에도 ‘가로수를 누비며’, ‘장수무대’, ‘광복 20년’등의 라디오 프로와 외화 ‘뿌리’, ‘육백 만 불의 사나이’, ‘여름, 바람과 구름, 그대로 그렇게,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등 젊은 노래를 탄생시킨 ‘해변 가요제’, 유지인의 풋풋함과 어린(?) 노주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드라마 ‘님’과 장미희, 정윤희가 김세윤(이 양반은 드라마에서 유독 여복이 많은 이였다.)을 사이에 두고 열연했던 ‘청실홍실’ 등의 TV 프로로 당대 부동의 시청률 1위를 달렸다. 유지인.장미희.정윤희는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현재 활동하고 있는 중견 연기자와 7080세대를 대변하는, 밴드라는 말보다 친숙한 그룹사운드 가운데 대다수가 동양방송을 통해 데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라디오 서울입니다. 1964년 5월 9일 정오 하루 20시간의 방송 그 서막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동양방송은 20년도 채우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추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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