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경방원죽염 최동순 대표, 고품질 자죽염(紫竹鹽) 명인

Interview / 유성욱 기자 / 2025-03-07 21:31:56
- 최상의 품질 좋은 재료가 최고의 자죽염을 만드는 기본 요소

[YOLD=유성욱 기자] 죽염은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지혜를 담은 보물이었다. 현대에 와서 죽염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인산 김일훈에 의해서였고, 본격 생산과 함께 일반인들도 쉽게 접하게 된다. 죽염이 다시 다가온 최근의 그 역사는 40여 년 남짓, 때로 몇 차례 세간의 논란에도 꿋꿋하게 존재를 입증시키며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애용되고 있다. 그런데 죽염 중에서도 최상급은 자색빛이 도는 자죽염이라고 하는데, 최동순 대표가 운영하는 경북 상주의 경방원죽염은 바로 그 최상급 자죽염을 만드는 곳이다.
 
경방원죽염의 최동순 대표는 어떠한 역경과 고난에서도 노력을 다한다면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표본으로써 또 다른 감동을 전하는 주인공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를 머뭇거리는 누구라도, 최동순이라는 한 사람보다 상황이 더 나빴던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의 최종 학력은 중학교 중퇴다. 고고지성(呱呱之聲)과 함께 세상에 나온 첫 순간부터 좋지 않았다.

 

 

1959년 경북 선산 출생, 핏덩이를 낳은 엄마는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있었고, 그 와중에 다른 살림을 차렸다. 동냥젖도 힘겨워, 조부모는 보리 삶은 물에 사카린을 타 먹여 손주를 키웠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가 돌아왔지만, 궁색한 형편은 달라지지 않았다. 20리 길을 걸어야 닿았던 초등학교는 때를 맞추지 못해 남들보다 뒤늦게 입학했다가, 4학년 때 서울 홍제초등학교로 전학간다. 육성회비조차 내지 못해 주눅 들었던 서울살이는 인창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계속됐고, 결국 중학교 학업을 더 잇지 못하고 시골로 내려간다. 혹시 선산중학교로의 전학이 가능한지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그걸로 정규 학력은 끝이었다.

모친과 농사를 짓고 살던 그는 추석 때 고향에 내려온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다시 서울로 간다. 하지만 그가 들어간 곳은 학교가 아니라 경기도 고양에 있는 한 공장이었다. 현대산업사, 당시 대성황이었던 쌀통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남들은 학교 다닐 나이,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약속한 만큼 월급을 주지 않았다. 능곡에 있는 신일산업사로 옮겼다. 1년 경력이 10년 경력만큼이나 일을 잘했다. 전에 일하던 공장보다 월급이 3배였다. 김포에 있는 범한강철로 옮겼다. 직원 수십 명 공장에서 공장장 바로 밑 총반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새로운 공장에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인생의 새로운 전환은 우연히 찾아왔다. 동료들과 공을 차다가 걷지 못할 정도로 다리를 다쳤다. 김포에 있는 한 침구사에게 침을 맞고 바로 걸어나오며, ‘이걸 배우면 좋은 일을 하면서 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학으로 침을 공부하다가 1991년 새롭게 죽염과 접했다. 죽염에 매료된 그는 인산죽염 서울총판까지 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러다 갑자기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언론에 죽염에 대한 부정적 뉴스가 나오며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 된 것이다. ‘죽염을 직접 제대로 만들어야겠다!’라고 결심한 그에게 경북 상주시 낙동면 신오리의 전답이 눈에 들어왔다. 1995년 경방원을 설립하고 연구와 실천을 거듭하며 죽염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자죽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다.


“품질 좋은 서해 천일염을 대나무통에 다져 넣고 입구를 황토로 막은 다음, 소나무 장작불로 구워내고 이를 분쇄해 다시 대나무 통에 넣어 굽는, 8회 반복 과정은 일반 죽염과 제조법이 비슷하지요. 핵심은 마지막 9회 고열처리 과정에 있습니다. 온도로 할 수 있는 최대한 올려야 합니다. 그러면 죽염이 불꽃을 내며 용암처럼 쏟아져 내리는데, 참고로 이를 용융이라고 하지요, 굳은 후에는 자수정처럼 자색을 띠게 됩니다.”

최동순 대표가 전하는 보통 회색이나 백색인 죽염과 경방원 자죽염 차이에 대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최대한 고열을 내서 죽염을 굽냐가 핵심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고열을 낼 수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에 관해 물었다.

“제가 어릴 때 했던 일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습니다. 밤낮없이 공장에서 일할 때 주로 판금부에서 용접을 전공했는데, 사실 기계란 기계는 다 다뤄봤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죽염소성버너를 개발할 수 있었던 비결이지요. 이 죽염소성버너로 특허까지 획득했습니다. 보편적으로 1,500도~1,700도를 한계로 9회차 작업을 마치는데, 경방원죽염에서는 2,500도~3,000도까지 끌어올려 고열처리를 합니다. 특수 고안된 소성버너 덕분에 가능합니다. 이 소성버너는 큰 특징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고열로를 2중 철가마로 만들어 고온에도 녹아내리지 않게 고안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통상적 소요시간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끝낸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맑은 빛깔의 자죽염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죽염의 기화점 이상의 온도에서 작업하기에 상당량의 죽염이 손실된다고 한다. 천일염 1,000kg을 투입하면 최종적으로 250kg 밖에 나오지 않는다. 고열이라 가마를 더 자주 교체해주어야 해서 설비 비용도 훨씬 더 들어간다. 하지만 최상의 죽염을 만들겠다는 생각만으로 최 대표는 자죽염을 숙명처럼 만들고 있다.

“좋은 죽염을 만들기 위한 곳이라면 다 그렇게 하겠지만, 철저하게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주재료인 천일염은 1년 이상 장기보관해 간수를 충분히 빼낸 후 사용하고, 해풍 맞으며 3년 이상 자란 왕대, 그리고 황토와 송진, 소나무 장작도 최고로 사용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은, 비나 눈이 내리거나 흐린 날에는 절대 죽염을 굽지 않고, 맑은 날에만 죽염을 굽고 있습니다. 날씨도 자죽염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을 통해 자죽염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전하는 최동순 경방원죽염 대표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되는 큰 영광을 기반으로 지식 공유를 통해 우리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 나가겠다는 각오와 함께, 편견에 기반한 언론 보도로 관련 산업이 위기에 봉착한 사례를 여러 차례 지켜보며, 죽염에 대한 몰이해를 바꾸는 데도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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