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컬럼 - 일상과 생각 / 창고는 무엇을 품는가 (1)

Column / 박정하 칼럼니스트 / 2026-07-20 21:51:40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천천히 걸어본다. 발걸음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우리 집 앞 신작로 건너편이다. 그곳에는 예전에 ‘선린 애육원’이라는 고아원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고, 나는 그 아이들과 마당을 뛰어다니며 별다른 경계 없이 친구가 되었다. 그때는 그 아이들이 왜 그곳에 살고 있는지, 일정 나이가 되면 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이었을 뿐이다.

다소 엉뚱한 비유 같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 기억 속 그곳은 하나의 창고였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갈 곳 없는 아이들의 눈물과 웃음을 가만히 품어주던, 작고도 서글픈 창고. 그리고 그곳은 훗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린 삶의 무게 때문에 서로를 외면해야 했던, 어느 친구의 쓸쓸한 뒷모습까지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지금 그 자리엔 커다란 병원이 들어서있다. 근처에 있었던 양조장은 주차장이 되었고, 목욕탕도 극장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건물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시절 동네에서 가장 잘 살던 집들도 먼 기억 속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렇게 부잣집들은 시대마다 이사를 다녔던 모양이다. 양조장이 잘 되던 시절에는 술을 빚는 집이 넉넉했고, 온수가 귀하던 때에는 목욕탕이 번성했다. 자동차가 늘어나자 주유소가 들어섰고, 대형마트가 골목을 대신하더니 이제는 지도에도 잘 표시되지 않는 거대한 물류창고와 데이터센터가 이 시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 되었다.

돌아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처음에는 곡식을 넣을 창고를 지었고 다음에는 물건을, 이제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창고를 짓는다. 창고의 이름은 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부지런히 저장하며 살아간다. 그것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큰 데이터센터를 지어 올린들, 그 차가운 기계가 어린 시절 양조장 집 친구가 건네주던 달착지근한 지게미의 맛까지 저장할 수는 없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놀던 애육원 마당의 소란스러움, 또한 이름조차 희미해진 친구들의 얼굴, 거기다 가슴 한구석을 오래 데우는 시린 그리움 같은 것은 어느 서버에도 저장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기계의 기억장치가 아니라, 오직 내 낡은 마음의 창고 구석에만 고즈넉이 쌓여 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눈부시게 진화하는 동안, 기억을 붙잡아 두는 기술 역시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기억해야 할 소중한 것들은 더 자주, 더 쉽게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고향에 갈 때마다 나는 사라진 건물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 이제는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오래된 나만의 창고 문을 남몰래 열어보기 위해 간다. 그곳은 아무와도 함께 나눌 수 없는 나만의 기억 창고이며 아직도 애육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양조장 집 친구가 건네주던 달착지근한 지게미가 상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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