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가을사랑’ 신계행, 그 노래 없이는 가을을 맞을 수도 사랑을 보낼 수도 없다!

Interview / 유성욱 기자 / 2025-11-17 08:05:50

[욜드(YOLD)=유성욱 기자]  ‘가을전어’ 굽는 고소한 냄새는 집 나간 며느리도 다시 불러들인다지만, 해마다 단풍 일고 낙엽 지는 가을이면 아련한 옛사랑의 기억을 기어이 소환해 내고야 마는 명품 노래가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을 시즌송으로 오래동안 자리한 신계행의 ‘가을사랑’이 세상에 나온 지 어언 40주년, 팬과 함께 걸어온 지난 날들을 다독이며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추억의 포크가수 신계행을 만났다.

팬들과 함께 한 데뷔 40주년 콘서트
대중의 사랑으로 불멸의 생명을 가진 노래들이 있다. 만약 그 노래가 한 계절을 대변하는 곡이라면, 그 계절만 되면 불사조처럼 타오르곤 한다. 대한민국의 봄을 상징한다는 ‘벚꽃엔딩’이 그러하다. 슈퍼스타K 준우승과 함께 2012년 정규1집을 내며 데뷔한 버스커버스커는 ‘벚꽃엔딩’이라는 메가 히트곡을 남기고 2013년 돌연 활동을 중단했지만, 노래는 해마다 벚꽃 피는 봄날의 환영(幻影)이 되어 사람들의 귀에 맴돌곤 한다.

그런데 ‘벚꽃엔딩’ 훨씬 이전에 그 계절이 되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노래가 있다. 올해가 40주년이다. 아련한 ‘옛사랑’과 동의어 같은,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가을’을 느끼게 하고, ‘가을’을 떠나보내게 하는, ‘가을사랑’이란 곡이다.

 

‘그대 사랑 가을 사랑 단풍 일면 그대 오고/ 그대 사랑 가을 사랑 낙엽 지면 그대 가네/ 그대 사랑 가을 사랑 파란 하늘 그대 얼굴/ 그대 사랑 가을 사랑 새벽안개 그대 마음/ 가을아 가을 오면 가지 말아라/ 가을 가을 내 맘 알려나/ 그대 사랑 가을 사랑 저 들길엔 그대 발자국/ 그대 사랑 가을 사랑 빗소리는 그대 목소리'

 

기교로 가득하거나 화려한 노래가 아니다. 반복적 리듬에 비교적 단순한 멜로디다. 그런데 신계행이라는 가수의 담백한 목소리와 어울려 듣는 이의 마음 깊은 곳 감정선을 건드린다. 물론 그 감성을 증폭시키는 오브제는 가을이라는 배경과 분위기다. 그래서 ‘가을사랑’이란 곡의 또 다른 이름은 ‘가을연금’이기도 하다. 실제로 포크가수 신계행에게 가을은 가장 바쁜 계절이다. 해마다 변함없이 전국 곳곳의 무대에 섰지만, 올해의 가을은 좀 더 특별했다. 데뷔 40주년을 맞는 해의 가을이었기 때문이다.

신계행은 지난 10월 방영된 KBS <백투더뮤직> 시즌2 7화의 주인공으로 전국의 시청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가을의 낭만과 함께 추억을 선사했다. 대망의 40주년 콘서트는 11월 7일 서울 스카이아트홀에서 개최됐다. 2010년 데뷔 25주년 콘서트 이후 오랜만의 대형 단독 무대였다.
“단순히 햇수가 되었다고 기념무대를 갖는다는 게 조금 올드하다고 느껴져서 사실 안하려고도 했어요. 얼마전 조용필 콘서트를 보고 받은 충격과 느낀 점 때문에 더욱 부담도 됐구요. 불러야 할 곡이 앵콜곡 포함 18곡인데, 그래서 더욱 단단하게 준비했고, 지금은 큰 짐을 내려놓아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25년 전인 데뷔 15주년 콘서트 때와 마찬가지로 늦은 나이에 인연이 된 남편의 든든한 지원이 힘이 됐다. 이번 콘서트를 준비한 선엔터테인먼트 고성태 대표가 남편이다. 게스트로 콘서트를 빛내준 전영록과 해바라기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마운 분들은 잊지 않고 자신을 기억해주는 오랜 팬들이다. 욜드의 삶을 살고 있는 팬들이 동행한 자녀에게 ‘이 분은, 지금으로 치면 아이유와 같은 존재였다’고 말하며 자신을 치켜세울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느낀다.

쉘부르가 점 찍었던 ‘마지막 대어’

신계행은 당시 포크음악인들의 성지이자 플랫폼과 같았던 이종환의 쉘부르가 1982년 발굴한 재원이자, 여성포크 음악의 계보를 잇는 솔로 가수다. 중학교 입학선물로 기타를 받았고, 제대로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지만, 그때만 해도 가수로 활동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제주여상을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좋아하는 노래와 기타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 제주시 중앙로터리 한 카페에서 통기타동아리가 결성됐다. 아직 소녀 티가 풋풋한 신계행도 그 통기타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제주MBC 라디오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에 초대되기도 했다. 당시 PD가 그런 신계행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서울 종로에 가면 음악다방 ‘꽃잎’과 ‘약속’이 있고, 명동에 가면 ‘쉘부르’가 있는데, 거시서 네 실력을 한번 테스트해 봐라”

마침 친구 하나가 남자친구를 만나러 서울로 간다는 것이었다. 약속장소는 명동, 신계행도 친구를 따라 나섰다. 그런데 만약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면, 손에 익은 기타를 챙겼을 것이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이었기에 맨손이었다. 명동을 거닐다 쉘부르 간판을 발견했다. 발걸음이 이어졌다. 마침 오디션이 열리는 날이었다. 제주에서 들었던 말이 귀에 맴돌았다. 기타를 빌려 오디션에 참여했다. 조동진의 ‘작은 배’와 자작곡 두곡을 불렀다. 지금은 거장이 된 가수 이문세도 끝내 통과하지 못했다는 쉘부르 오디션, 이후 이야기는 KBS ‘백투더뮤직’을 통해서 알려진 바 그대로다.

“전구에 불이 14개가 들어오며, 이른바 올킬을 했지요. 당시로선 두둑했던 3만 5천원 상금을 받아 제주도에 내려갔는데, 며칠 후 심사위원 중 한 분이셨던 이태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온 거에요. ‘이종환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있다’라며,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느냐’구요”.

어머니와 상의했다. 마침 남동생이 경희대 의대에 합격했다는 낭보가 전해진 터였다. 어머니는 ‘어차피 온 가족이 서울로 터전을 옮길 터이니, 먼저 가서 자리잡고 있으라’며 서울행을 허락했다.

곁다리 참여 앨범 두 곡이 평생 대표곡

제주에서 올라온 신계행은 쉘부르의 DJ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신계행의 가치를 알아본 이종환의 특별한 배려였을 것이다. 하루 일당 1,500원은 팍팍한 서울살이에 큰 도움이 됐다. 맘껏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덤’ 이상이었다. 하지만 쉘부르 무대에 서는 가수들을 보며 자신의 노래를 갖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그러던 중 기회가 우연히 다가왔다. 쉘부르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박강성이 앨범을 준비하는데, 아직은 무명이다 보니 단독 앨범이 아닌 옴니버스 앨범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1985년 박강성의 노래를 타이틀로 내세운 대성음반 제작 ‘별들의 속삭임’은 그렇게 나오게 됐다. 참여가수 4명 중 한 명으로 신계행의 노래 2곡은 뒤편 SIDE B에 실렸다. 그런데 주인공 박강성과 다른 두 명을 제치고 신계행만 날개를 달았다. 먼저 뜬 곡이 ‘사랑 그리고 이별’.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가사가 인상적인데, 결혼을 앞둔 한 여성이 자신이 한센병 환자임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났다는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노래였다. 곧이어 뜬 곡이 지금까지 가을의 명곡으로 평가받는 ‘가을사랑’. 애초 신계행의 마음에 들었던 곡은 아니었다. 동시같은 단순한 가사가 내키지 않아 부르지 않으려 했다는 것.

두 곡 모두 작사 작곡을 한 사람이 했다는 특징이 있다. 가람과뫼 출신 작곡가 민재홍, 각별한 케미의 그는 신계행에게 은인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대표곡 거의 모두가 민재홍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가을사랑’을 내켜하지 않는 신계행에게 ‘음색을 염두에 두고 특별히 만든 노래’라며, ‘이 노래가 평생을 먹여살릴 것’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민재홍은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 남성 듀오 가람과뫼의 리더로 활동하며 ‘다듬이소리’ ‘생일’ 등 제목은 아련해도, 노래가 흘러나오면 ‘아, 그 노래!’라며 반가워 할 한국적 정서의 명곡을 많이 발표했던 작곡가다. 곁다리로 참여했던 옴니버스 앨범, ‘나중에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엄마가 가수로 활동해 이런 노래도 불렀다' 정도의 추억을 만드는 기분’으로 불렀던 노래들이 연이어 히트하자, 돈냄새를 맡은 제작사도 신계행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1987년 신계행 1집이 발매됐다. 두가지 버전이었다. 모두 타이틀곡은 ‘가을사랑’과 ‘사랑 그리고 이별’. 곧이어 1988년 신계행 2집이 나왔다. ‘안개 걷히는 날’이 타이틀곡이었는데, 앞서의 잔잔한 두 곡과 달리 고음과 화려한 전개가 인상적이다. 역시 민재홍이 만들었는데, 당시 최고 인기였던 이선희나 신효범을 염두에 두었던 곡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노래 중 ‘이 세상에 태어나 어느 하나를 만나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데 어이해’라는 대목에 완전히 꽂혔던 신계행이 작곡가 민재홍을 설득, 자신의 2집 타이틀곡으로 삼았던 것. 여담이지만, 기자는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들을 때 자꾸 비슷한 느낌을 전하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이선희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노래속 사랑이야기 서사는 계속 이어질까?

신계행 3집은 ‘지난 추억으로’를 타이틀곡으로 1991년 발매됐다. 기대를 갖고 제작했지만, 비운의 앨범으로 남는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노래 환경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더 이상 통기타 포크음악에 주목하는 언론도, 받아주는 무대도 없었다.각자도생 생존의 길을 걸어야 했다. 1992년 설 수 있는 무대를 찾아 상승기획이란 곳으로 소속을 옯겼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남궁옥분 등 막강 멤버를 구성, 전국의 대학축제 무대를 장악했던 기획사였다. 신계행도 어머니를 매니저 삼아 작은 차 한 대를 몰고 전국을 다니며 축제무대에 섰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다 3집 앨범 발매 15년만인 2006년 정규 4집 앨범을 발표한다. 컨츄리 리듬의 경쾌한 통기타 감성이 돋보이는 타이틀곡 ‘사랑이 온다’ 역시 작곡가 민재홍의 작품이다. 앨범마다 한 곡 이상씩은 히트곡을 건졌는데, 4집을 통해 새로운 대표곡 하나를 추가했다. 마지막 앨범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또 10년이 지난 2016년이다. 작곡가 민재홍과 함께 하지 않은 유일한 앨범 5집이다. 사연이 있다.

“민재홍 작곡가는 어려서부터 제빵사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뒤늦게 그 꿈에 도전해, 뉴욕에서 베이글집을 냈다고 해요. 잘 됐었다고도 들었는데, 얼마 후 닥친 코로나로 인해 가게를 접고 국내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정규 5집 앨범에는 민재홍 작곡가 대신 특별한 이름이 눈에 띈다. ‘바람 바람 바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으며 작곡가로서도 활동하는 김범룡이 타이틀곡 ‘소중한 사람’을 작사 작곡한 것. 재미난 것은 신계행의 대표곡을 연결하다 보면 하나의 서사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다 안타깝게 헤어지고, 다시 가을에 사랑이 왔지만 낙엽과 함께 사랑을 보내고, 그 다음 다시 사랑이 찾아와서, 비로서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된 서사다. 그 다음 전개는 무엇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가수가 아닌 한 여인으로서의 이야기도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앞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지난 2002년 마흔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인연을 만났다. 지금은 소속가수가 몇 안되는 비교적 단촐한 엔터테인먼트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원래 IT 1.5세대로 활동했다고 한다. 동시에 열렬한 음악 애호가였던 그는 한때 강서구에서 라이브카페를 운영했는데, 그곳에서 점 찍어둔 신계행을 만났고, 평생의 동반자 겸 지원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로 활동이 어려웠던 시절부터 꾸준히 팬들과 소통하고 있는 유튜브 ‘신계행 TV’도 곧 200회를 앞두고 있는데, 남편의 응원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중단했을지도 모른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새롭게 맞는 2026년은 5집 앨범이 나온 지 다시 10년이 되는 해다. 내년 봄 발표를 목표로 정규 6집을 어느 정도 준비 마친 상태지만 고민이라고 한다.

“앨범에서 한곡씩은 사랑해주셨는데, 어느 곡을 타이틀로 할지 생각이 많구요. 지금까지 이어온 노래의 서사를 어떻게 이어서 전개시킬지도 살짝 고민입니다.”

봄에 가을 분위기를 타이틀로 할리는 만무하다. 모쪼록 새로운 노래로 신계행이라는 가수를 기억하는 팬들은 물론이거니와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따뜻한 위안과 행복을 전하기를 기대해본다.

writer _유성욱 기자 / photo _조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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