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마에 포디움위에서 / 먼 길을 달려 태백에 오다 — 오늘은 '빛을 노래하다'
- 정마에 포디움워에서 / 정현구 칼럼니스트 / 2026-09-12 09:46:34

[욜드(YOLD)=정현구 칼럼니스트] 오늘은 태백문화예술회관이다. 일명 땜방으로 왔다.어제 오후, 오래 알고 지낸 기획사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영상감독이 한 분 필요합니다."내 전문 분야는 아니다. 영상 제작이나 오퍼레이팅이 본업도 아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준비된 영상을 음악에 맞춰 플레이하면 되는 일이란다."음악감독이시니까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30년이 넘는 인연이다. 멀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결국 "그러죠"라고 했다.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다. 전문성만으로 움직이는 일도 있지만, 때로는 오래된 인연과 의리 때문에 움직이는 일도 있다.그렇게 오늘 아침 태백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멀다. 운전대를 잡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태백.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 한가운데, 태백문화예술회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물을 마주하는 순간 피곤함이 조금 가셨다. 유난히 맑은 하늘이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산중턱에 자리한 회관은 생각보다 단정하고 웅장했다. 주변의 산과 나무, 그리고 파란 하늘이 건물의 흰 외벽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태백이라는 도시가 가진 풍경이었다. 그 풍경 속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석탄. 태백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한 조형물이 서 있었다.태백은 한때 대한민국 산업화를 떠받쳤던 탄광도시다.사람들은 이곳의 깊은 땅속으로 내려가 검은 석탄을 캐냈다. 어두운 땅속에서 캐낸 검은 돌이 대한민국의 밝은 내일을 만드는 에너지가 되었다.

그 조형물 앞에 서고 나서야, 오늘 공연의 제목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빛을 노래하다〉. 오늘 공연은 '2026 광부의 날 지정 기념 공연'이다.프로그램을 살펴보니 1부는 성악과 피아노, 바순 등의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2부에서는 권원태 연희단의 풍물과 버나, 살판, 줄타기가 이어진다.그리고 공연 프로그램 마지막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광부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오늘의 번영을 기억하고, 그들의 땀과 희망을 음악으로 기념하며 미래 세대에 그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참 역설적이다. 광부들은 빛을 캐기 위해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우리에게 빛을 주기 위해, 그들은 어둠을 견뎌야 했다.그래서 오늘의 공연 제목인 '빛'은 단순히 밝음을 뜻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그 빛에는 광부들의 땀이 있고, 가족들의 기다림이 있고, 태백이라는 도시의 역사가 있고, 산업화를 지나 오늘까지 온 대한민국의 시간이 들어 있을 것이다.음악도 그렇다. 무대 위에서 들리는 소리는 밝고 아름답지만, 그 소리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연주자는 연습하고, 지휘자는 해석하고, 스태프는 무대를 만들고, 누군가는 조명을 맞추고, 누군가는 영상을 준비한다.관객에게는 몇 시간의 공연이지만, 그 몇 시간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인다.

땅속에서 석탄을 캐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오늘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원래 내 일이 아니었던 영상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왔지만, 결국 내가 할 일은 하나다. 음악이 가야 할 길을 방해하지 않고, 음악과 영상이 같은 호흡으로 가도록 돕는 것.어쩌면 지휘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모든 소리를 직접 만들어내지 않는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전체의 흐름을 조율할 뿐이다.오늘은 악기를 지휘하는 대신, 음악과 영상의 타이밍을 살펴야 한다. 조정실 콘솔에서 무대와 화면을 바라보며 '지금'이라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그것 역시 하나의 지휘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늘의 땜방은, 어쩌면 내가 잠시 서게 된 또 하나의 지휘봉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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