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언젠가부터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높은 곳에 오르고, 더 화려한 명함을 가지는 것이 삶의 성공이며 풍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보다 조금 더 앞서기 위해 부지런히 달린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이루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애쓴다. 그러나 그 숨 가쁜 경쟁의 톱니바퀴에 몸을 맡긴 채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리고 있는 걸까.’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나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사이, 정작 소중했던 것들은 하나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더 나은 삶을 좇느라, 정작 내게 이미 주어진 삶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참되고 귀한 것들은 의외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걱정 없이 베개에 머리를 묻는 깊은 밤의 평온함, 햇살이 맑게 스며드는 아침 창가에서 천천히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 아무런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는 한적한 오솔길, 홀로 배낭을 메고 낯선 땅을 누비던 세계여행의 자유,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나누었던 진솔한 대화와 웃음,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가족과 친구의 따뜻한 눈빛.
젊었을 때는 이런 것들이 너무 평범해서 귀한 줄 몰랐다. 그러나 인생의 거친 풍파를 얼마간 지나고 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평범하다는 것은 흔하다는 뜻이 아니라, ‘쉽게 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일 뿐’이라는 것을.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밤이 되어 편안히 잠들 수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는 것. 어쩌면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평생을 애써 찾아 헤매던 가장 값비싼 보물인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사치’라는 단어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곱씹어 본다. 진짜 사치는 비싼 것을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의 이름은 바로 ‘감사’일 것이다. 감사는 없는 것을 더 갖게 만드는 마음이 아니라, 이미 내게 주어진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부족함 속에서도 충분함을 발견하게 하고, 무심히 지나치던 하루를 하나의 선물처럼 바라보게 한다. 깊은 잠이 그렇고, 여유로운 아침이 그렇고, 건강한 몸이 그렇고, 사랑하는 가족이 그렇다. 평소에는 너무 당연해서 눈여겨보지 않던 것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순간 전혀 다른 빛을 낸다.
세상의 기준은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듯 끊임없이 변한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은 평범한 것이 되고, 어제의 명품이 오늘은 유행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명함에 적힌 직함도, 통장에 찍힌 숫자도 언젠가는 달라진다. 하지만 한 사람이 지닌 존엄과 삶의 품격은 그런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내면의 평화를 내어주고,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좇느라 정작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쳐버린다면, 많이 가진 삶이라고 해서 과연 풍요로운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가장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부유함은 눈앞에 얼마나 많은 것을 쌓아놓았느냐에 있지 않다.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평범한 기적들을 알아보는 눈,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 그것이 진짜 부유함이다.

오늘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깊이 숨을 내쉬어 본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따뜻한 차 한 잔도, 곁에 있는 사람의 안부를 묻는 목소리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 한다. 오늘 나에게 허락된 이 평범하고도 묵직한 하루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충분히 부유한 사람이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이 쉽게 가르쳐 주지 않는, 그리고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참된 사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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